‘교육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됨’이라는 지향성을 가진다. 그래서 소위 ‘배운 자’라고 하는 지식인들은 사람들의 모범이 되어야 하는 책임의식을 동반하는데 우리 선조들은 남을 대하는 도리인 ‘체면’을 중요하게 여겼다. 비록 일제 강점기에 우리의 정신문화를 손상시키기 위한 일제의 고도책략에 의해 ‘체면’이라는 말을 완전히 격하시켰지만 아직도 우리의 의식 속에 확고히 자리 잡고 있는 사림됨의 모습이라고 볼 수가 있다. 말과 생각과 행동으로 한 사람의 덕을 가늠하는 ‘체면’은 불교에서도 신(身), 구(口). 의(意) 즉 일상생활의 모든 행위로 업(業)을 만들어 간다고 것을 강하게 규정한다. 업(業)이라고 하는 것은 신이 내리는 형벌이 아니라 자신의 행동이 스스로 원인을 만들어 그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업(業)은 오랜 세월동안 행동과 말과 생각으로 축적이 되어 있다가 어느 날 작은 불씨하나를 만나면 확연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하나의 씨앗이 세월이 흐른 후에 나무나 꽃, 열매 등 다른 모습으로 그 과(果)로 보여 지는 것과 같다. 그래서 교육이라는 씨앗은 그 순간, 그 자리에서 효력을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일생을 통해 원인을 만들고 원인이 결과가 되기도 하며 또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는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되는 것이다. 이 순환의 고리를 부정적으로 만드는지, 긍정적으로 만드는 지가 바로 좋은 업인지, 좋지 않는 업인지 구별하게 되는 것이다. 특히 지식적으로 남들보다 뛰어나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직책에 있다고 하더라도 궁극적 교육의 지향점인 사람됨의 모습에서 종착점이 정해지기도 한다. 부단히 죽을 때까지 배워야 한다는 것은 지식이나 기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배우는 과정 속에서 자신을 수련하기 위해서 이다. 그런데 이 목적을 잃어버리는 어느 순간 자신이 만들어놓은 신, 구, 의 삼업에 의해 그 동안 쌓은 것들이 흔들리고 무너지는 만다. 우리사회는 교육을 통해 선비라는 정신, 체면이라는 의식구조가 단단히 자리를 잡고 있는 만큼 사람들에게 도덕적인 행동을 요구하는 잣대가 어느 순간에는 엄격해진다. 거의 종교적일만큼 한국사회의 하나 됨을 잘 엿볼 수가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그 중 한국인에게 민감하고 공정하게 작동되기를 바라는 교육의 기회에는 더욱 엄격한 요구가 표출된다. 아이러니 하게도 자신들은 기회를 독점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으면서 타인들에게는 국민적 정서를 건드려 깊숙한 상처를 들춰내고 또 들춰내어 공론화해서 기어이 파멸시키고자 하는 경향이 심각하다. 사람됨의 모습을 요구하는 우리사회와 그것을 악용하여 반대편 사람들에게 악착같이 그 기회를 이용하기 때문에 우리주변은 늘 시끄럽다. 특히 언론은 기회를 포착하여 더 떠들고 있는데 그것조차 서로서로 업(業)의 순환고리를 만들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순환고리는 한 사람에게만 돌아가는 부메랑이 아니다.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참여한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돌아오는 부메랑을 만들어가고 있는 셈이다. 그 시작점이 누구이든 간에. 그래서 이 순간, 우리는 내가 무슨 생각과 무슨 말과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거울에 비춰보면 깨어나야 한다. 남들도 그렇게 하기 때문에 당연하게 공정하지 않는 기회를 운(運)으로 알고 기뻐하고 있지는 않는지, 억지로 운을 만들기 위해서 연줄이 자신의 직책을 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비춰 보아야한다. 진정한 체면은 높은 직책에 올라가거나 인간세계가 만들어 놓은 성공으로 보여 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 자리에 있더라도 자신의 왜곡된 사상이나 세계관을 위해 타인을 무자비하게 깔아뭉개는데 쓰는 것이 아닌가를 다시 한 번 살펴야 한다. 벌은 신이 주는 것이 아니며 나 혼자 재수가 없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든 만큼 되돌려 받는 것이라는 것을 우리 조상들은 진지하게 생각을 했고 자신을 위한 개인적인 명예와 권력에 치중을 하는 것이 아니라 덕을 쌓아 베푸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신, 구, 의로 쌓은 현세의 모든 행적은 자식대와 그 다음 손자대에까지 그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의 교육의 자식뿐만 아니라 손자에게 더 누적된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중시 여겼기 때문에 격대교육은 별 다는 용어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가정마다 교육의 문화와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오늘날 부모가 자신의 권위와 인맥을 동원한 부정적인 행위들이 수십 년 혹은 수년이 지난 다음에 자신뿐만 아니라 자식들의 앞날을 자연스럽게 막는 어처구니없는 사건들을 많이 목도하게 된다. 이것은 비단 남의 한 개인의 일만으로 보기에는 사회 전반적으로 만연하다. 특히 고위공직자들의 청문회 때마다 끊임없이 대두되는 현실에 참담하기까지 하다. 과연 우리사회에 진정한 선비는 존재하는가? 진정한 체면은 존재하는가? 진정한 도덕성은 존재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점검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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