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줄거리를 알고 오면 좋다고? 영화에선 스포일러(spoiler)가 공공의 적이다. 관객에게 줄 온전한 감동을 훼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페라는 사정이 다르다. 1853년 베네치아에서 초연된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오늘날까지 유럽뿐 아니라 여러 나라의 무대에 오른다. 관객들이 줄거리를 잘 아는 오페라인데 말이다. 그러면 질문해보자. 사람들은 왜 아는 오페라를 또 보는 걸까? 오페라는 같은 작곡가의 작품이라도 지휘자나 연출자의 해석에 따라 다른 맛을 낸다. 같은 오페라지만 다른 오페라인 것이다. 요즘은 연출자의 역할이 특히 중요해졌다. 세계적인 오페라 연출가 빌리 데커(W.Decker)는 2005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 드림팀을 선보였다.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세 주인공으로 안나 네트렙코(비올레타 역), 롤란도 비야손(알프레도 역), 토마스 햄슨(제르몽 역)이 출연한 것이다. 하지만 화려한 캐스팅 못지않게 화제를 모은 건 전위적인 무대디자인이었다. 데커는 백색의 미니멀한 21세기 무대에 19세기 파리의 비극을 풀어낸 것이다. 오페라 연출은 대체로 연극 연출가의 몫이었지만 요즘은 미술전공자들이 많아졌다. 2018년 예술의전당에서 ‘니벨룽의 반지(1부 라인의 황금)’를 연출한 아힘 프라이어(A.Freyer)는 화가다. 무대뿐 아니라 의상, 조명 등 보이는 모든 것에 관여한다. 2017년 국립오페라단의 야외오페라 ‘동백꽃아가씨’를 패션디자이너 정구호가 연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외국의 경우 조각이나 건축 전공자가 오페라를 연출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은 남다른 볼거리를 선사해 관객들을 불러 모은다. 하지만 오페라 연출가의 가장 큰 고민은 백년이 훨씬 넘은 오페라를 어떻게 현대로 소환할 것인가에 있다. 시간적·공간적 배경이 현대로 옮겨 온 오페라는 ‘동시대성’을 취득해 관객들의 공감을 확산한다. 오페라 속 이야기가 단지 옛날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지금도 일어나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페라가 동시대성을 확보하는 것(감각적인 미술장치와 함께)은 오페라에 생명력을 부여하는 행위와 같다. 이는 관객들이 아는 오페라를 다시 또 보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