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74주년을 맞아 최근 언론매체에 소개된 강제징용 피해자 아들이 기록한 ‘재한일본인 처’가 연일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일 갈등이 깊어지고 있던 터라 재한일본인 처들의 삶을 가까이에서 기록한 그에게 관심이 쏠리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유다.-강제징용 피해자였던 아버지 故 김상진 씨 15살 때 일본 나가사키 다카시마 탄광으로 강제 징용된 이가 있다. 그는 수백 미터 갱도에 들어가 숨도 쉬기 어려운 곳에서 석탄을 캐며, 고통의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당시 일본인들은 한국인들을 시켜 한국인을 문초하고 고문했다. 그는 더이상 식민지 역사의 피해자로 남고 싶지 않았고 자라나는 한국의 아이들에게 직접 경험한 아픈 역사를 제대로 가르쳐야겠다고 다짐했다.
광복 후 늦은 공부를 시작한 그는 안동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돼 학생들과 아들에게 “일본 제국주의가 얼마나 영악한 방식으로 한국인들을 지배했는지 알아야 광복 뒤 한국의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고 늘 강조했다고 한다. 그는 강제징용 피해자인 김상진(1923~2017년) 씨. 그는 김종욱(60) 씨의 아버지다.-지역에서 활동하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 김종욱 씨 그가 카메라를 어깨에 둘러멘 건 20대 후반 결혼 후 첫 아이의 성장 모습을 기록하면서다. 시내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왕릉이며, 유적을 관람하는 국내외 관광객들이 딸아이와 함께 그의 카메라에 자연스레 담겼다. 어느 날 그는 경주에서 살아가는 사람으로 잊어서는 안 될 현상들을 기록해야 한다는 필요성이 의무감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불혹을 넘긴 나이에 만학도의 삶을 선택하게 됐다. 직설적인 상황 연출과 강인한 이미지의 작품들은 그의 내면과 그때의 현실을 고스란히 대변한다. 그는 변화하는 현대 사람들의 생활과 고도경주의 가치를 새기며 역사성과 시대성의 어울림을 기록해 나갔다. 그렇게 그는 다큐멘터리 사진작가로 역사를 기록하고 진실을 전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경주 나자레원 할머니들과의 인연 그는 경북 의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당시 그곳에서는 ‘밤새 사람이 기찻길에 뛰어들었다’는 흉흉한 소문이 들곤 했었고, 그때마다 동네 사람들은 ‘일본 여자라고 수군거렸다. 일본 여자들이 한국에 와서 비극적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연유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자랐던 그는 훗날 나자레원이 있는 경주에 살면서 의문의 죽음에 대해 조금씩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외부 사람의 출입이 엄격했던 나자레원을 몇 년의 기다림 끝에 찾게된 김종욱 씨.
그는 그곳에서 역사의 그늘에 묻혀 조용히 순응하고 살아가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강제징용 피해자인 아버지와 같은 처지의 시간을 견뎌왔을 할머니들과 대면하며 그는 가슴 한편이 먹먹해져 왔다.
나자레원 할머니들은 일제 강점기에 조선으로 이주해 조선인 남편과 결혼해 살다가 해방 후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평생을 이국땅 대한민국에 남게 된 일본 할머니들이다. 일제강점기 우리 민족의 설움이야말로 다 표현할 수 없겠지만 사랑을 믿고 조선인과 결혼했던 일본의 여성들. 해방 후 남편만 믿고 한국에 들어온 그들 역시 또 한편의 희생자들이었다.
하지만 그들 중에는 한국 고아를 입양해 기르고 평생 봉사활동을 하며 가해 국민이라는 죄책감을 씻으려고 노력했던 할머니들도 많았다.
-‘재한일본인 처’ 다큐멘터리 사진으로 기록 그는 일본 할머니와의 대화에서 아버지를 보았다. 전쟁이 한 사람의 삶을 송두리채 바꿔 놓았음도 알 수 있었다. 그때부터 ‘재한일본인 처’의 삶을 기록하는 일은 더욱더 무겁게 다가왔고, 사라져 가는 역사를 본격적으로 기록에 나섰다. 그의 아버지 역시 역사의 모든 면을 기록해야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는다며 그가 ‘재한일본인 처’를 기록하는 작업을 독려했다.
그렇게 그는 10년 만에 한국과 일본 모두로부터 외면받던 ‘재한일본인 처’들의 삶과 역사를 사진으로 기록할 수 있었고, 그것은 2014년 ‘근대기 조선 이주 일본인 여성의 삶에 대한 연구: 경주 나자레원 할머니를 중심으로’라는 박사학위 논문으로 이어졌다.
-우리의 정체성 담은 사진으로 훗날 기억될 역사 기록 강제징용 피해자였던 그의 아버지를 비롯해 ‘재한일본인 처’ 역시 일본 제국주의와 전쟁의 피해자다. 그의 기록은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한 중요한 자료이자 일본 제국주의의 희생양으로 평생 상처를 가지고 살아온 그들의 마지막 가는길에 작은 위안이 될 것이다.
이제라도 역사가 숨겨지고 왜곡되는 것을 막고, 그들에 대한 바른 시선과 이해가 필요하다는 김종욱 씨. 그는 지금도 우리의 정체성을 담은 작품으로 먼 훗날 기억될 우리의 역사를 기록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