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사진-7월                                                      정일근 내 유년의 7월에는 냇가 잘 자란 미루나무 한 그루 솟아오르고 또 그 위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내려와 어린 눈동자 속 터져나갈 듯 가득 차고 찬물들은 반짝이는 햇살 수면에 담아 쉼 없이 흘러갔다.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착한 노래들도 물고기들과 함께 큰 강으로 헤엄쳐 가버리면 과수원을 지나온 달콤한 바람은 미루나무 손들을 흔들어 차르르차르르 내 겨드랑에도 간지러운 새잎이 돋고 물아래까지 헤엄쳐가 누워 바라보는 하늘 위로 삐뚤삐뚤 헤엄쳐 달아나던 미루나무 한 그루. 달아나지 마 달아나지 마 미루나무야, 귀에 들어간 물을 뽑으려 햇살에 데워진 둥근 돌을 골라 귀를 가져다대면 허기보다 먼저 온몸으로 퍼져오던 따뜻한 오수, 점점 무거워져오는 눈꺼풀 위로 멀리 누나가 다니는 분교의 풍금소리 쌓이고 미루나무 그늘 아래에서 7월은 더위를 잊은 채 깜빡 잠이 들었다. -여름날의 추억과 낭만을 떠올려주는 시 아마 지금처럼 햇살 따가운 날이었을 것이다. 예닐곱 살 꼬맹이는 더위를 참지 못해 시냇가에 멱을 감으러 나왔다. 솜을 쌓아 놓은 것처럼 뭉실뭉실한 모양으로 햇빛을 받아 하얗게 빛나는 뭉게구름이 “어린 눈동자 속”에도 “터져나갈 듯 가득 차고”, 반짝이는 햇살에 빛나는 찬물들은 쉼 없이 흘러가는 시냇가 언덕. 그는 목청을 돋워 “냇물아 흘러흘러 어디로 가니” 그 착한 노래들을 부르면, 이따금씩 튀어오르는 물고기들과 함께 그 노래들은 큰 강으로 헤엄쳐 간다. 복숭아나 참외, 아니면 수박 과수원이라도 될까. 과수원을 지나온 달콤한 바람은 차르르차르르 미루나무 손들을 흔들고 마침내 꼬맹이 겨드랑에도 간지러운 새잎이 돋아날 것 같다. 꼬맹이는 참지 못하고 등을 물에 대고 높이 선 미루나무를 바라보며 물아래까지 어설픈 헤엄을 잘도 쳐 간다. 그 헤엄따라 미루나무가 삐뚤삐둘 달아나는 게 보인다. “달아나지 마 달아나지 마 미루나무야” 애달픈 간청 끝에 물가로 나와 “달구어진 둥근 돌을” 귀에 가져갈 때 온몸으로 퍼지는 오수. 아직 다 감기지 않은 눈꺼풀 위로 누나가 다니는 분교의 풍금소리가 쌓인다. 아이는 깜빡 잠이 든다. 「흑백사진」이라는 제목에 부합하듯 이 시는 그 시절을 지내온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공감하는, ‘여름철 아이의 뛰노는 장면’을 생동감 있게 그려놓았다. 조금만 더 자라면 이 아이는 수박서리도 참외서리도 하는 코밑이 거뭇한 청소년기를 지나게 된다. 여름철은 그들에게 먹을거리와 놀 거리가 지천에 깔린 계절이었다. 시인은 그것을 특유의 감각적 이미지로 재현해낸다. 자연에 동화된 유년 시절의 추억들을 감각적 이미지로 표현해내는 게 일품이다. 제목 자체가 비유(빛바랜 어린 시절의 추억→ 흑백사진)고, 구름을 바라보는 모습을 “그 위 파란 하늘에 뭉게구름 내려와 어린 눈동자 속 터져나갈 듯 가득 차고”로 잡는 묘사를 지나, “ 삐뚤삐뚤 헤엄쳐 달아나던 미루나무 한 그루”의 공간감각을 지나, 화자는 완전히 자연에 동화(“내 겨드랑에도 간지러운 새잎이 돋고”)된다. 그 동화의 극점이 “7월은 더위를 잊은 채 깜빡 잠이 들었다”에 나타나는 화자 이동이다. 꼬맹이와 7월이 마침내 구분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 여름의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도 잃었다. 누군가 네 가난의 목록이 무어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머뭇거리며 자연과 함께 하는 ‘추억과 낭만의 결핍’이라고 말해야만 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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