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0여년의 세월이 지났음에도 국보 제318호 포항중성리신라비에는 당시 신라인들이 지향했던 문자 조형 미감이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와 한국고대사학회는 지난 18일, 19일 양일간 경주드림센터에서 ‘포항중성리 신라비’발견 10주년을 맞이해 비석이 지닌 세계기록유산 가치를 조명하고 연구 성과를 돌아보는 학술회의를 가졌다.
중성리비(501년)는 지난 2009년 5월 경북 포항시 흥해읍 중성리 도로 공사 현장에서 출토됐으며, 냉수리비(503년), 봉평비(524년)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신라3비 중 하나다. 모양이 일정치 않은 자연석 화강암에 한 면에만 글자가 음각돼 있으며, 글자는 모두 203자가 확인됐다.
비석에는 제작한 501년 당시 신라 관등제 성립 과정, 지방 통치 양상을 알려주는 중요한 내용이 새겨져 있으며, 유물 가치가 인정돼 2012년 보물로 지정한 데 이어 2015년 국보로 지정됐다.
정현숙 원광대 서예문화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번 학술회의에서 ‘중성리비’를 세밀한 자형분석과 유사시기 타 비석 및 중국 비석과의 서체비교 등을 통해 특수성과 당시 신라비의 보편적 미감을 동시에 밝혀냈다.
그는 “‘중성리비’는 최소한으로 치석한 자연석에 예서, 행서, 초서의 필의가 있는 원필의 해서로 쓰였다”라며 “자연석의 형태에 부합하는 장법과 결구로 인해 드러난 천연한 서풍은 ‘냉수리비’ ‘봉평비’ ‘남산신성비’에 이르기까지 90년간 지속돼 후대 서풍 형성에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라면서 한국 서예사에서 고구려, 백제와 구별되는 6세기 신라풍 해서의 원조라는 독보적 위상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이어 “질박한 글씨는 자연에 순응하는 신라인의 천연한 성장을 나타낸다”라면서 “6세기 신라의 예술성이 7세기에 이르러 신라 서예가 급진적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고, 신라인이 표현한 독창성이 예술가들이 추구해야 하는 궁극적 목표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는 점에서 ‘중성리비’의 서예사적 의의는 자못 크다”고 강조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이종훈 소장은 “이번 학술회의를 계기로 중성리비의 역사적, 학술 가치가 재조명돼 단지 우리만의 유산이 아닌 세계의 유산으로 거듭나길 기대해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