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궁과 월지 주변 잘 가꿔놓은 연꽃단지, 장맛비에 빗방울 살갑게 굴리는 잎 넓은 연잎사귀로 수줍은 듯 뽀얀 살결, 송이송이 오므렸다 폈다 연꽃이 한창이다. 진흙탕 속에서도 청정한 빛으로 피워 문 꽃봉오리, 용케도 견뎌낸 사바세계의 꿈들이 저리도 어여쁘고 환하게 여물려, 장맛비 몰고 가는 여름 하루를 삶의 여유로 쉬어가게 한다. 연밭 안에 둘러친 육각기와지붕 정자에 걸터앉아, 수런대는 연잎에 마음을 맡기면 빗소리도 젊은 날 밤새워 또박또박 쓰던 편지글처럼 정겹다. 넓고 푸른 잎사귀 위로 빗물 또르르 말려들어 영근 물방울 수정구슬, 도톰하게 꿰어 살색 고운 연꽃 목덜미 걸어두고 월지궁을 들어선다. 수그러진 비 사이 전등불빛 서린 운치로 달못이 젖어 있다. 신록의 배경과 맞물려 장맛비에 간지럼 타는 물빛 낯짝의 못안 풍경, 들여다볼수록 신비에 싸이는 궁 안의 천년비밀을 다만 처연하게 훑고 가는 비의 여운.【삼국사기】신라본기 역사적 기록을 읽어 내리면, 30대 문무왕(660~681) 14년(674) 궁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를 심고 귀한 새와 기이한 짐승들을 길렀다. 19년(679) 동궁을 짓고 궁궐 안팎 여러 문의 이름을 달았다. 32대 효소왕 19년(697) 군신들을 임해전에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35대 경덕왕 11년(752) 동궁아를 설치하고 상대사 및 차대사 한사람을 두었다.36대 혜공왕 5년(769) 군신들을 임해전에 불러 잔치를 베풀었다.39대 소성왕 2년(800) 폭풍으로 임해, 인화 두 문이 파손 되었다.40대 애장왕 5년(804) 임해전을 중수하고 동궁 만수방을 새로 지었다.41대 헌덕왕 14년(822) 동생 수종을 태자로 삼고 월지궁으로 모셨다.46대 문성왕 9년(847) 평의전과 임해전을 중수하였다.47대 헌안왕 4년(860) 왕이 임해전에 군신을 모았다.48대 경문왕 7년(867) 임해전을 중수하였다.49대 헌강왕 7년(881) 군신들을 불러 향연을 베풀고, 주악이 무르익을 때 왕이 거문고를 타고 좌우의 신하들은 노래를 부르며 흥에 겨워 즐겼다. 56대 마지막 경순왕 5년(931) 고려 태조 왕건을 임해전에 모셔 잔치를 베풀었다. 잡지 제8, 직관(중) 동궁관(太子宮)⦁동궁아(東宮衙)⦁세택(洗宅)(비서실)⦁월지전(月池典)월지악전(月池嶽典:월지의 조경과 관리를 담당했던 부서로 추정)⦁승방전(僧房典)⦁용왕전(龍王典: 용왕에 대한 제사 담당) 기록이 보인다. 신라의 유물들은 대부분 고분에서 출토된 부장품들인데, 월지출토유물들은 궁중에서 사용했던 실생활용기들로 그 중에 나무배 등 700여점 주요유물은 국립경주박물관 서편 ⟦월지관⟧에 전시되어 있다. 대표적인 유물은 월지 제4건물지와 제5건물지 사이 연못 바닥 개펄에서 출토된 목재주사위(8세기경) 참나무로 만든 주령구(酒令具)다. 이 주사위는 14면체로 사각형 면이 6군데, 육각형 면(삼각형 면)이 8군데로 구성되어, 신라인의 풍류와 멋을 실감케 하는 놀이기구로, 굴려서 멈춘 면에 쓰여 진 내용에 따라 벌칙을 행하는 놀이 기구다. 귀하고 소중한 유물을 안타깝게도 발굴 당시 보존처리 과정 중 서울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특수 제작한 오븐에 수분을 제거하려, 당시로는 첨단 기기였으나 자동조절장치 고장으로 오븐이 과열되어 주사위가 불에 타서 재가 돼 버렸다. 실측을 해두었던 자료를 복제품으로 재현해서 사용하고 있는데, 주사위의 구조를 뜻풀이해보면 다음과 같다.음진대소(飮盡大笑): 술 마시고 큰 소리로 웃기 삼잔일거(三盞一去): 술 석 잔 한 번에 마시기자창자음(自唱(自飮): 스스로 노래 부르고 스스로 술 마시기금성작무(禁聲作舞): 소리 내지 않고 춤추기 중인타비(衆人打鼻): 여러 사람 코 때리기유범공과(有犯空過): 덤벼드는 사람 있어도 가만히 있기추물막방(醜物莫放): 더러워도 버리지 않기양잔즉방(兩盞則放): 술 두 잔이면 쏟아버리기임의청가(任意請歌): 마음대로 사람을 지목해 노래 청하기곡비즉진(曲臂則盡): 구부린 팔로 다 마시기농면공과(弄面孔過): 얼굴을 간질어도 가만히 있기자창괴래만(自唱怪來晩): 스스로 ‘괴래만’ 노래 부르기월경일곡(月鏡一曲): 월경 한 곡 부르기공영시과(空詠詩過): 시 한 수 읊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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