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3차 세계유산위원회가 ‘경주 옥산서원’(사적 제154호)을 비롯한 9곳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목록에 등재키로 최종 결정했다. 경주는 이미 석굴암·불국사(1995년),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양동마을(2010년)이 등재돼 있어 이번 옥산서원 등재로 국내 세계유산 14곳 중 4곳을 보유하는 명실상부한 우리나라 최고의 역사문화도시로서의 위상을 세우게 됐다. 1572년(선조 5년)에 건립된 옥산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자 회재 이언적을 기리기 위한 곳으로 그의 학문은 퇴계 이황에게 이어져 영남학파 성리설의 선구가 됐다. 안강읍 옥산리에 자리한 이곳은 회재가 42세 때인 1532년(중종 32) 김안로의 등용을 반대하다 오히려 정적들의 공격을 받아 파직된 후 낙향해 기거하던 곳이다. 옥산서원은 회재가 죽은 지 19년이 지난 1572년 경주부윤 이제민을 비롯한 문인과 유림의 주도로 건립됐다. 1573년 임금에게 ‘옥산’(玉山)’이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이 됐다. 구인당에 걸린 옥산서원 편액은 원래 아계 이산해가 썼으나 1838년(헌종 4년) 화재로 소실된 후 새로 지으면서 추사 김정희가 다시 썼다. 옥산서원은 조선 후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제외된 47개 서원 중 하나이며 회재 선생의 저서와 역대 명인들의 글씨와 문집이 보존돼 있다. 지난해 국보로 지정된 ‘삼국사기’ 완질을 오랫동안 보관했고, 여주이씨 옥산문중 전적인 ‘사마방목’, 이언적의 ‘수필고본’ 등이 보물로 지정됐다. 1835년에는 목판을 소장하는 문집판각(文集板閣)을 조성했다. 옥산서원은 국내 어느 서원보다 많은 고서와 고문서, 문집 등 문헌자료들이 보관돼 있고 보존상태도 좋다. 이는 소중한 책들의 유출을 막기 위해 ‘옥산서원 책은 서원 문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뜻의 서원서책불출문외(書院書册不出門外)라는 이황의 글을 적은 편액을 경서각 앞에 걸었다. 또 정조도 옥산서원의 책을 밖으로 가져갈 수 없다는 어명을 내린 적이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현재까지도 많은 책과 유품이 잘 보존돼 있는 소중한 서원이다. 경주시는 내년부터 옥산서원 인근 부지에 ‘옥산서원 교육관 및 역사문화관광단지’를 조성해 세계유산인 양동마을 및 주변 서원 등과 연계하는 특화된 경주의 전통 유교문화 관광 인프라를 구축하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경주 북부권인 양동마을에 이어 옥산서원의 세계유산등재는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경주의 조선 유교정신문화 유산이 가치를 발하고 있는 것이다. 시는 이번 기회에 선조들의 훌륭한 유산인 옥산서원을 잘 보존하고 정신을 계승해 현대 사회에 꼭 필요한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고 전파하는데 정성을 모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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