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남풍 2                                                                                                                                                                            도광의 잔치가 끝나도 큰방에 둘러앉아 밤늦도록 놀았다. 잠잘 데가 모자라 마루에서 베개 없이 서로 머리 거꾸로 박고 자면서도 소고기국에 이밥 말아 먹는 게 좋았다 “언니야, 엊저녁 남의 입에 구린내 나는 발 대고 잤는 거 알기나 아나?” “야가 뭐라카노, 니 코 고는 소리 땜에 한숨도 못 잤데이” 주고받는 말이 소쿠리에 쓸어담을 수 없는 헌것이 돼버린 지금, 등 너머 흙담집 등잔마다 정담은 밤비에 젖어가고 있었다 멀리 시집가서 사는 누님을 하룻밤이라도 더 자고 가라고 이 방 저 방 따라다니며 붙잡던 솔잎 냄새 나는 인정을 어디서 볼 수 있겠는가 해산한 딸 구안(苟安)하고 돌아오는 동리 앞 냇가에 눈물 흔적 말끔히 씻고 가없이 펼쳐진 하늘 쳐다보고는 마음 안에 갇힌 막막한 울음을 걷어내고 마을 안으로 발걸음 옮기는 뼈아픈 가난의 설움을 저승의 번답(反畓)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 것인가 -인정과 가난, 설움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그 시절 결혼식을 마치면 삼촌들과 고모들은, 그 자식인 사촌들은 안 방, 건넌방에 모여 저마다 신산한 삶의 이야기들을 꺼내놓았다. 어느새 손자 손녀를 업고 온 누이, 형들도 보였다. 주름살이 늘어난 친정오빠 모습에 먼 곳에서 온 고모들이 연신 눈가를 훔치는 모습이 창호지 문살 실루엣으로 보이는 날이 많았다. 한 집에서 고모들에게 업혀 자라고, 삼촌들을 분가시키며 울며 시집가는 고모들을 본 우리 형제들은 그들이 갈라치면 모두 울먹울먹하고 종일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이 시는 그런 공동체의 평화로웠던 추억을 환기하는 작품이다. 그 바탕에는 가난과 설움 속에서도 피어나는 인정이 담겨 있다. 여기서 그래서 잔치가 끝나도 “마루에서 베개 없이 머리 거꾸로 박고 자면서도 소고기국에 이밥 말아 먹는 게 좋았”고, 밤새 못 자게 했던 ‘발 구린내’와 ‘코골이’의 언쟁도 정담(情談)으로 들리는 것이다. 그 인정은 “멀리 시집가서 사는 누님을 더 자고 가라고 붙잡던 솔잎 냄새”까지 풍기고 있고, “해산한 딸 구안(苟安)하고 돌아오는 동리 앞 냇가에 눈물 흔적 말끔히 씻”는 친정 어머니의 모습에도 서려 있다. 문제는 그런 “솔잎 냄새나는 인정”이 “소쿠리에 쓸어담을 수 없는 헌것이” 되어 “밤비에 젖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요즘은 잔치가 끝나도 서둘러 축의나 부의를 봉투에 담아 건네기만 할 뿐, 모두 다 제 살기에 바빠 약속이라 한 듯 뿔뿔이 흩어진다. 이 시는 여기에 덧붙여 사라진 것이 인정만이 아니라 ‘진정한 가난’도 사라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설움을 표시 안 내려 하는 친정 엄마의 모습을 다룬 4연에서 나타난다. “펼쳐진 하늘 쳐다보고는 마음 안에 갇힌 막막한 울음을 걷어내고 마을 안으로 발걸음 옮기는 뼈아픈 가난의 설움을 저승의 번답(反畓)에서나 만나볼 수 있을 것인가” ‘뼈아픈 가난의 설움’은 우리가 현실적으로 바랄 것은 아니지만 그 설움도 소중히 받들어야 할 가치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는 점에서도 이 시는 우리 시단에 깊이를 더한다. 또 하나 그는 언어를 매만지는데도 심혈을 기울인다. 일찍이 “청남빛 가을” “청동색 강”, “편 구름”(「갑골길」)이라는 언어의 조탁을 보여주었던 시인은 이 시에서도 “소쿠리에 쓸어담을 수 없는 헌것”, “솔잎 냄새나는 인정”, “저승의 번답(反沓)” 같은 자기만의 언어를 뽐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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