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국사에 수세식 화장실이 있었다고?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로 가서 실컷 울어라.해우소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 다니고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다닌다.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선암사 해우소 앞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정호승 시인의 시 ‘선암사’이다. 이 선암사 해우소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런 화장실이 아니다. 정말 울고 싶도록 정감이 넘친다. 해우소 앞에는 ‘ㅺᅟᅡᆫ 뒤’라는 폐찰이 걸려있다. 엉덩이를 깐 뒤에 볼일을 보라는 의미가 아니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읽어 ‘뒷간’이다. 지저분한 이야기라고 눈살을 찌푸릴 사람도 있겠으나 변소, 화장실, 뒷간 이외에도 이곳 경주지방에서는 통시·정낭·측간이라고도 했다. 사찰에서는 주로 해우소라고 하는데 근심을 푸는 곳, 번뇌가 사라지는 곳이라는 의미이다. 선암사 뒷간과는 달리 이곳 불국사에 흩어져 있는 해우소 흔적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불국사 기념품점 북쪽에 여러 가지 형태의 석재들이 널려 있는데 한눈에 돌로 된 변기임을 알 수 있다. 그것도 한두 개가 아니고 그 수가 많다. 흔히 이것을 매화석(梅花石)이라고도 한다. 궁중에서는 왕과 왕비의 대변을 일반 백성들의 그것과 같이 그냥 변이라고 하기 어려워 ‘매화(梅花)’라고 불렀다. 이곳의 변기도 천 수백 년 전 스님들이 사용하던 변기라고 해서 그 격을 높여 매화석이라 부르는 것 같다. 옛날 사찰의 규모를 알려면 구시와 부도밭, 해우소의 크기를 보면 알 수 있다고 했다. 지금까지 발굴된 석조변기의 수가 이 정도인데 당시엔 얼마나 많은 변기가 있었을까? 또 사용자와 용도에 맞는 다양한 형태가 놀라울 뿐이다. 당시 불국사가 규모가 크고 화려한 사찰이었음을 웅변하고 있다. 다음은 월지 북동쪽에서 화장실 유적이 발굴되었다는 2017년 9월 28일자 매일신문 기사의 일부이다. “1200년 전 통일신라시대 왕족들이 사용한 수세식 화장실 유적이 발견돼 화제다. 화강암을 가공해 다듬고 바닥에 구멍을 낸 뒤 그 위에 납작한 돌로 발판을 삼은 형태다. 볼일을 보고 난 다음에는 옆에 둔 항아리에서 물을 떠 변기 구멍에 쏟아 부었다. 물은 경사진 도수로를 따라 흘러 내려가 지금의 정화조 같은 시설에 모였다. 지금까지 발견된 고대 화장실로서는 굉장히 발전된 방식이다. 유럽에서도 이런 개념의 수세식 변기는 1600년이 다 되어서야 등장했다. 우리 선인들의 기술과 발상, 위생 관념이 새삼 놀랍다” 월지 북동쪽에서 발굴된 화장실 유적보다 더 먼저 알려진 것이 이곳 불국사 석조 변기이다. 이중 일부는 그 형태로 보아 수세식 변기임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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