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음악의 거장은 단연 노르웨이의 그리그(E.Grieg/1843-1907)다. 하지만 교향곡에서는 두 명의 1865년생 동갑내기가 발트 해를 사이에 두고 경쟁했다. 한 사람은 핀란드의 시벨리우스이고, 다른 한 사람은 덴마크의 닐센이다. 전자가 자연의 위대함을 음악으로 표현했다면, 후자는 인간의 마음을 그려냈다. 이들의 교향곡에는 독일 교향곡과는 다른 북유럽 특유의 차분한 정취가 흐른다. 시벨리우스(J.Sibelius/1865-1957)는 불과 27세에 민족서사시 칼레발라(Kalevala)를 모티브로 한 쿨레르보(Kullervo/1892년)를 작곡하여 핀란드를 대표하는 민족주의 음악가로 부상했다. 잘 알려진 대로 교향시 핀란디아(Finlandia/1899년)는 그를 핀란드의 영웅으로 만들었다. 핀란디아는 러시아의 압제에 시달리고 있던 핀란드 국민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구세주 같은 음악이었다. 곧 금지곡이 되었지만 핀란드의 민족의식은 더욱더 강렬해졌다. 시벨리우스는 평생 일곱 편의 교향곡을 작곡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짧고 간결해진다. 마지막 7번 교향곡(1924년)에 이르러서는 고전파 교향곡의 길이만큼이나 짧아지고, 단악장 형식을 써서 기존의 형식을 탈피했다. 하지만 공통점은 모두 조국의 위대한 자연을 노래한 ‘전원’교향곡이란 점이다. 시벨리우스의 미스터리(mystery)는 걸작인 7번을 작곡한 후 죽을 때까지 무려 30여년이 흐르는 동안 8번 교향곡을 내놓지 못했다는 점이다. 조국 독립(1917년) 이후 생활이 안정되어 창작욕구가 사라졌다는 분석이 있는가 하면, 준비하던 8번이 시대와 맞지 않아서 폐기해 버렸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편, 닐센(C.Nielsen/1865-1931)은 동갑내기 시벨리우스보다 한 편 적은 여섯 편의 교향곡을 작곡했다. 이 중에서 4번 불멸(Inextinguishable)과 5번이 유명하다. 제1차 세계대전 중(1916년)에 작곡된 4번 교향곡은 동향 선배인 안데르센(H.C.Andersen/1805-1875)의 동화처럼 전쟁의 공포에 빠진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다. 4번 교향곡은 4개의 악장이 쉬지 않고 연주되어 하나의 악장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형식은 전쟁 후에 작곡한, 닐슨의 대표작 5번 교향곡(1922년)에도 이어진다. 닐센은 그리그, 시벨리우스와 함께 북유럽 음악의 3대 거장으로 불리지만, 우리나라에선 아직 낮선 이름이다. 요즘 간간히 닐센의 교향곡이 무대에 오른다. 꼭 들어보길 바란다. 교향곡의 주류를 벗어나 민족주의에 기초한 이런 음악들을 듣는 건 음악 편식증을 극복하는 일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