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빌때, 마음이 빌때, 세월이 흐를수록 이야기로 쌓여가는 자수는 제게 좋은 벗입니다”
한 땀 한 땀 그녀의 손이 지나간 자리에 정겨운 우리의 야생화가 피어난다. 실과 바늘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그녀. 일상의 이야기를 손끝으로 엮어내는 그녀는 바로 자수연구가 강남순 씨다. 포항에서 나고 자란 강남순 씨는 막연히 오십이 넘으면 한적하고 고즈넉한 경주서 살겠다고 생각해왔었다. 직장생활을 하던 그녀는 그 시기 우연히 경주로 발령을 받게 됐고, 늘 바쁘기만 하던 그녀에게 시간적인 여유도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서 평소 관심 있었던 규방 공예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교육과정 중에서 자수를 접하게 됐죠. 앞만 보고 바쁘게 걸어왔던 저에게 자수는 정말 신세계와도 같았습니다”
자수의 매력에 빠져 수를 놓으며 밤을 지새우는 일도 많았다는 그녀는 2008년 여름,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자수의 길로 접어들게 됐다. 어린 시절부터 그림에 남다른 소질과 열정을 드러냈던 그녀는 미래가 불분명하다는 부모님의 반대로 꿈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지만, 뒤늦게 시작한 자수를 통해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
특별한 일이 없는 시간 대부분은 주로 정원을 가꾼다는 그녀, 해마다 계절을 잊지 않고 피고 지는 꽃들 하나하나에 사랑을 내어줄 만큼 꽃을 좋아한다. 그리고 그 꽃들은 새하얀 무명천에서 다시한번 향기를 피워낸다. 뽀얗게 삶아 풀 먹인 흰 무명천에 색실로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으면 어린 시절 도화지에 그림 그리던 추억이 떠오른다는 강남순 씨.
그녀는 정겨운 우리 야생화를 주로 수놓고 있고 그것은 다양한 생활소품으로 활용되기도 한다. 자수연구가이자 자수강사로 활동하는 강남순 씨는 한 학기 100명 이상 되는 제자들을 양성해오며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어느 날 연세가 좀 있으신 분이 조심스레 나도 할 수 있겠냐며 어렵게 문을 두드리셨어요. 그분이 지금까지 수를 놓고 계신데 나이 들어 자수를 만난게 너무 기쁘고 감사하다며 새로운 인생을 사시는 것 같다고 하셨어요. 수강생 대부분 그런 분들이 많아요. 가족 뒷바라지 하시다가 뒤늦게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제가 쓰임 있는 사람이 된 것 같아 기쁘고 고마울 따름입니다”
자수를 통해 정을 나누고 인연을 만들어 가는 강남순 씨.
“많은 인연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합니다. 앞으로도 그러합니다. 햇살 가득한 창가에 마음 맞는 이들과 차 한잔 나누며 수도 놓고, 이야기도 나누는 소소한 일상이 저는 참 좋습니다”
앞으로 꽃과 어우러진 경주의 풍경을 주제로 자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라는 그녀는 환갑이 되는 해, 지금껏 해왔던 자수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전시를 할 계획이라고 말한다. 늘 새로운 작품을 선보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연구하는 강남순 씨. 그녀의 손끝에서 탄생한 사랑스러운 작품은 오늘도 많은 이들에게 행복을 안겨준다.
강남순 씨는 2008년 자수에 입문해 2011년에 규방공예지도사(평생교육진흥연구회), 프랑스자수지도사(한국문화예술진흥회), 생활자수지도사(한국문화예술진흥회) 등의 자격증을 취득했다. 2013년부터 2017년까지 경주, 포항, 영천의 일자리 창출 사업으로 다문화 여성에게 재능기부 봉사를 이어왔으며,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경주시에서 공로상을 받은 바 있다. 2017년에는 영·호남 미술대전 자수부문 대상, 대한민국문화예술연예대상 규방공예자수부문 대상을 수상하며 전문성과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현재 통도사 성보박물관, 경주시 평생학습센터, 영천시 교육문화센터 자수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봉황로 문화의 거리 내 ‘바람의 화원’ 자수공방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