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민지 조선의 실천하는 화가 土水 황술조(黃述祚, 1904~1939) 선생<인물사진>의 회고전이 오는 9월 15일까지 경주 솔거미술관 제1, 2기획전시실에서 열린다. 그가 세상을 떠난지 여든해, 35세로 생애를 마감하기까지 황술조 선생은 9년이라는 짧은 화업이 있었다. 사람들은 황술조 선생이 미술 운동에 흥미를 보이지 않고, 중앙화단에도 초연한 채 시골에 파묻혀 풍류를 즐기면서 무욕의 일상을 살아간 작가라고 평가한다. 게다가 그의 작품에서 밀도 있는 투철한 작가의식은 찾기 어렵다고까지 말한다. 하지만 그는 경주 근대화단의 최초 선각자요, 한국 근대미술에서도 위상이 높은 경주 출신 서양화가 1호라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가 태어난 1904년의 조선 땅은 러일전쟁터였다. 그는 계림 보통 학교를 졸업하고 3·1만세 운동을 겪었고, 서구 문명이 해일처럼 몰려들던 경성에서 양정고보를 다녔다. 그리고 1930년 아시아 최고의 미술대학이었던 동경미술학교 서양화과를 졸업했다. 귀국해서는 개성과 경주에서 머물면서 동경미술학교 동문전, 서화협회전, 목일회, 목시회 등 전람회와 단체활동을 했고, 경주 고적보존회에도 참여했다. 황술조 선생이 실천하는 화가였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작품은 도시노동자의 힘찬 움직임을 그린 ‘연돌소제부’다. 동경미술학교 후배인 홍득순은 묵직한 주제를 과감하게 선택해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 필요한 정치성 있는 시위를 암시한다고 평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황술조 선생의 유화 및 수채화, 드로잉 작품 9점이 제1기획전시실에서 전시되며, 제2기획전시실에서는 삼성미술관 리움에 소장돼 있던 사진 작품집을 통해 작품 이미지 34점과 1933년 조선중앙일보 연재 삽화, 1938년 동아일보 연재삽화가 최초로 공개된다. 또 일본동경미술대학 졸업전에 출품된 6점의 자화상을 영인본으로 만나볼 수 있다. 황술조 선생의 작품에는 뚜렷한 특징이 있다. 과감한 색채, 표현의 단순화, 그리고 후경과 전경의 색의 뒤섞임 등이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고 있는 ‘계림풍경’, ‘여인상’ 등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듯 그는 자연 그대로의 사실을 묘사하는 관념적 사실주의가 아닌 다양한 형식적 특징을 찾아내려고 했다. 황술조 선생의 작고 80주년을 맞아 개최하는 이번 회고전은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선생의 작품 사진과 새로운 삽화들을 소개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이애선 전시기획자는 “이번 전시를 위해 조사한 결과 황술조 선생의 작품은 100여점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지만 소장처가 확실한 작품은 20여점에 불과하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이번 전시를 계기로 경주출신 황술조 선생의 새로운 작품을 발굴하고 그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는 계가가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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