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김기택 콘크리트 바닥이 금이 가는 까닭은단단한 등딱지가 쩌억, 쩍 갈라지는 까닭은밑에서 쉬지 않고 들이받는 머리통들이 있기 때문이다.콘크리트가 땅을 덮고 누르기 전그곳에 먼저 살던 원주민이 있기 때문이다. 콘크리트 밑에 깔린 수많은 물줄기들이봄이 오면 깨어나밖으로 솟구쳐 나오려다 목이 꺾여 죽으면새 물줄기들이 몰려와 다시 들이받기 때문이다. 물렁물렁한 물대가리들이 치받는 힘에딱딱한 콘크리트가 간지러워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바위를 뚫는 물방울의 시간이 솟구쳐 콘크리트가 들썩거리기 때문이다.콘크리트 갈라진 자리마다푸른 물줄기가 새어 나온다.물줄기는 분수처럼 솟구쳐 포물선을 그리지만땅바닥에 뚝뚝 떨어지지는 않는다.쉬지 않고 흔들려도 떨어지지는 않는다. 포물선의 궤적을 따라출렁거리는 푸른 물이 빳빳하게 날을 세운다.약한 바람에도 눕고 강한 바람에도 일어난다.포물선은 길고 넓게 자라난다.풀줄기가 굵어지는 그만큼 콘크리트는 더 벌어진다.연하고 가느다란 풀뿌리들이콘크리트 속에 빨대처럼 박히자커다란 돌덩어리가 쭉쭉 콜라처럼 빨려 들어간다. -콘크리트를 빨대로 콜라처럼 빨아 마시는 풀 텃밭이라도 좀 가꾸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뽑아도 뽑아도 올라오는 것이 풀이라는 것을. 채소를 수확하는 기쁨보다 잡초와의 싸움이 더 끝이 없단 것을. 그러나 이즈음엔 풀을 대하는 태도도 많이 달라졌다. 『잡초는 없다』는 책도 나오고, ‘생명농법’이라 하여 아예 풀과 상생하는 농사를 짓기도 한다. 이 시는 콘크리트로 상징되는 도시 문명의 세계에서도 소멸되지 않는 야생적 생명력으로서의 ‘풀’을 그리고 있다. 시인은 풀을 ‘물줄기’, ‘물대가리’로 비유한다. “콘크리트 바닥”의 “단단한 등딱지가 쩌억, 쩍 갈라지는 까닭은/밑에서 쉬지 않고 들이받는 머리통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흙의 원주민인 그 물줄기들이 자동차나 행인에게 밟혀 머리가 꺾여도 새물줄기들이 다시 콘크리트를 들이받고, “물렁물렁한 물대가리들이 치받는 힘에” “콘크리트가 들썩거”린다는 것이다. 2연은 “푸른 물줄기”로 표현된 풀이 얼마나 개성적으로 육화되며 그 파장이 큰가를 보여준다. 묘사는 “분수처럼 솟구쳐 솟아올라도” “쉬지 않고 흔들려도 떨어지지 않”고 “빳빳하게 날을 세”우는 풀의 모습을 따라가다 드디어 시의 마지막 부분에 이른다. 글쎄 “풀뿌리들이” “빨대처럼 박히자” “커다란 돌덩어리가 쭉쭉 콜라처럼 빨려 들어간다”고 한다. 신선하고도 유쾌한, 그러면서도 오래 지속되는 울림을 가진 구절에 시인의 세계관이 다 들어 있다. 많은 이들이 이 세계를 점령한 시멘트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 운명처럼 방관하고 있는데도 이 연하고 가느다란 풀의 힘을 믿는 시인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든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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