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형조 교수의 『붓다의 치명적 농담』에 이런 글귀가 있다. “우리가 눈이 있어 사물을 보게 되고, 귀가 있어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니라, 보려는 ‘욕망’이 눈을 만들었고, 들으려는 ‘의지’가 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렇지 않을까요. 보려는 욕망이 없으면 사물은 보이지 않습니다. 코앞에 두고도 언제 있었더냐 싶지요. 귀도, 코도, 혀도, 몸도, 의식도 다 그렇습니다.” 불국사라고 하면 석탑과 축대 그리고 전각과 그 안에 모셔진 불상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이곳 불국사에는 이 외에도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참 많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그냥 스쳐 지나가기에는 너무 소중한 것이지만 누구나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보려는 욕망이 있어야 보인다. 불국사에는 3개의 석조(石槽)가 있다. 석조는 돌로 만든 물통으로 때로는 목욕을 위한 욕조로 쓰였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주로 공양이나 찻물을 받아놓고 사용했다. 불국사박물관과 당간지주 옆, 그리고 미술관(기념품 매장) 뒤쪽 3군데에 석조가 있다. 이 가운데 불국사박물관에 있는 석조는 동편 대웅전 진입로 옆에 있었는데 신라의 석조 가운데에서도 걸작에 속한다. 보물 제1523호로 지정된 이 석조가 원래 있던 자리에는 새로 만든 석조가 놓여있다.  비슷하게 만들면 ‘모조’, 원래의 것과 같게 만들면 ‘복제’라고 한다. 이 석조는 원래의 것과 같으니 복제 석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신라의 석조는 대체로 장방형을 기본형으로 하면서 바깥 면에 커다란 안상을 새기거나 석탑의 우주와 탱주 같은 새로 구획선을 새긴 형식이 일반적이지만, 이 석조는 네 귀를 모두 굴곡시켜 꽃 모양으로 만들고 몸체의 바깥 면에는 옆으로 띠를 둘러 구획을 짓고 아래 띠 속에 각각 6개와 3개씩의 안상을 새겨 놓았다. 안쪽의 옆면에는 연꽃을 음각하고 바닥에도 커다란 연꽃을 가득히 음각하여 물이 찼을 때는 마치 연꽃이 떠 있는 듯하였다. 당간지주 옆에 있는 석조는 매우 소박하고 정갈하다. 바깥 면에는 4면 모두 우주가 새겨져 있고 가운데 탱주가 1개씩 있다. 주변에 물이 공급되는 수로(水路)가 없어 본래의 위치가 아니고 다른 곳에서 옮겨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 석조의 앞에는 직사각형 모양의 석판이 있다. 윗면의 둘레에 사각형의 홈이 파여 있어 마치 석조의 뚜껑처럼 보인다. 그러나 석조의 윗부분과 아랫돌 홈이 파진 부분의 규격이 서로 맞지 않고, 이렇게 무거운 뚜껑을 덮었다가 사용할 때는 열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기에 뚜껑의 용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석조의 아랫부분에 물이 빠질 수 있는 홈이 파여 있는데 이 홈에서 빠져나온 물이 석판의 파인 부분을 통해 빠져나가는 수로의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이 되나 꼭 그런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미술관 뒤 화장실로 가는 길 왼쪽으로 또 다른 석조가 있다. 이 석조는 2개가 나란히 놓여있는데 높이를 달리하여 큰 석조에서 고인 물이 떨어져 작은 석조에 고였다가 다시 아래로 빠져나가게 되어 있다. 큰 석조는 아무런 장식이 없고 안쪽의 모서리를 둥글게 하여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산뜻한 느낌을 준다. 반면에 아래쪽 작은 석조는 보물로 지정된 석조처럼 장식이 있다. 물이 고이는 안쪽은 비스듬하게 곡면으로 처리되었으며 바깥쪽 넓은 면 한쪽에는 큼직한 안상무늬를 2개 새겨놓았다. 석조의 안쪽에 희미하게 연화문인 듯한 문양이 보이지만 육안으로는 판별이 어렵다. 순천 선암사 석조는 네 단으로 하여 쓰임에 따라 물을 뜨는 곳이 달랐다고 한다. 제일 위의 단은 찻물로 사용하며 두 번째 단은 마시는 물이고 세 번째 단은 일반물이며 네 번째 단은 허드렛물로 사용한다고 한다. 이 2단의 석조도 선암사 석조와 같이 그 쓰임이 각각 달랐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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