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안강평야 다음으로 넒은 들을 가진 마을이 있다. 바로 일명 ‘경주의 비버리 힐즈’로 불리는 보문동 남촌마을이다. 남촌마을은 보문호수 가는 길 옆, 넓은 들판을 끼고있는 마을이다. 보문관광단지로 들어가는 진입로에서 좁은 길을 따라가다보면 양지 바른 나즈막한 언덕과 구릉에 알맞게 지어진 여려 채의 집들이 나타나는 마을이다. 자연과 더불어 사는 이 마을 도로명은 보문마을길이다. 막다른 골목이 많은 편이었는데 지형으로 인한 것인듯 했다. 보문사지 당간지주와 대형석조가 보문들판 한 가운데 덩그러니 무심하게 놓여 있는가하면 진평왕릉, 전 설총묘, 부부총 등의 여러 문화유산이 함께 호흡하고 있는 유서깊은 마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마을엔 수시로 이들 문화유적을 찾는 발길로 외지인들의 출입도 잦은 편이다. 보문들판이 넓어서일까. 주민들은 한결같이 여유롭고 웃음이 넘치는 표정들이다. 아름다운 풍광을 배경으로 전형적인 농촌마을의 형태에 단정하고 잘 지은 한옥과 양옥의 새로운 주택들이 지어지면서 동네는 더욱 말끔해지고 커졌다. 지금도 전원주택단지에선 신축 주택 붐이 진행중이다. 보문호수 물이 개울로 흐르는 이 마을은 너른 들판의 농사를 짓는 천혜의 조건을 지녔다. 자연이 주는 축복속에 구성원들은 풍요롭게 살고 있다. 한편, 마을 곳곳에는 문화재 안내표지판과 함께 각종 펜션 등을 가리키는 안내판이 나란히 혼재돼 있어 이 마을의 현재 이력을 알려주기도 한다. ‘양지마을 이씨촌’이라고 돌에 새긴 안내비에선 이 마을의 자부심을 읽을 수 있었고 ‘보문정사’와 ‘우암고택’의 존재는 뿌리 깊은 전통과 유서깊음을 인지시켜주었다. 격조있으며 인정스러운 보문 남촌마을에는 유난히 뽕나무가 많았고 새까만 오디가 탐스럽게 익어가고 있었다. -남촌마을...영양 남씨와 양동(여강) 이씨의 집성촌, 양 가문에선 걸출한 인물들 많이 배출 이 마을은 약 270년 전 영양 남씨와 양동(여강) 이씨가 입촌해 집성촌으로 형성됐었다. ‘남촌’은 순천부사를 지낸 우암 남구명의 후손 성균관 진사 남룡만이 이곳에 와서 마을을 이루어 대대로 살고 있어 ‘남촌’이라 하고 ‘이촌’은 정헌공 이종상의 증조부 성균관 생원 이돈항이 조선 경종 때 이곳으로 와서 마을을 이루고 살았으므로 ‘이씨촌’이라 불렀다. 이씨촌과 남씨촌이 ‘남촌마을’로 불리고 있는 것이다. 보문 남씨 동네와 양동 이씨 가문에서는 사회 여러 전문 분야에서 걸출한 인물들이 많이 배출됐다고 한다. 지금은 그 후손들로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살고 있고 젊은 후손들은 주로 객지로 나가 살고 있다고 한다. 요즘은 살기 좋은 터전으로 소문이 나면서 타성씨들도 이 마을에 많이 유입되고 있다. 경주 시내 살던 사람들이나 울산과 포항 등지에서도 이곳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주민들이 많다고 한다. 이들은 마을의 외관도 바꾸고 있다. 넒고 잘생긴 주택을 지어 기존의 고즈넉한 분위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350여 년 세월 지닌 영양 남씨 종택...“지금도 이곳에서 제사 모시고 있습니다” 마을 깊숙한 골목에서 영양 남씨 종택을 만났다. 멀리서도 예사롭지 않은 기품이 넘치는 집이었다. 마침, 손주들과 여유로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이 댁 종부도 만날 수 있었다. 종부는 시내서 오가며 이 종택을 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350여 년 세월을 지닌 이 고택은 고재가 남아 있었으나 여러 번 보수를 하는 과정에서 지금은 일자형의 사랑채만 남아있었다. 예전의 안채는 현대식 양옥으로 변모해 있었다. 예전 집터에는 흙담이 경계를 분명히 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사라진 집터에 텃밭을 일구고 있었다. 크지만 정갈한 정독대로 미루어 옛 살림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다정한 미소로 반겨준 이 댁 종부는 “옛날에는 ‘口’자형 집이었습니다. 고택 입구에는 행랑채와 마굿간도 있었지요. 지금도 제사는 이곳에서 모시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막 익은 살구를 따다 건네주는 여유에서 큰살림을 맡아 많은 길손들을 후하게 대접했던 인심을 읽을 수 있었다. 텃밭에서 가꾼 상추도 한 봉지 그득 담아주시니 감동적이었다. 길쭉하고 넓은 마당에서의 행랑채를 지나 사랑채와 안채가 고졸했을 이 고택은 이제 상상만으로 그 아름다움을 간직해야 할 것 같았으나 아직도 그 기품은 여전히 전해졌다. -새로 정비된 명활산성~진평왕릉까지의 뚝방길은 또하나의 자랑거리, “시내서도 가깝고 보문관광단지권 가까워 문화생활하기도 좋은 편”   동네에 최근 자랑거리가 또 하나 생겼다. 바로 명활산성에서 진평왕릉까지 약 2km 구간으로 이어지는 뚝방길을 새롭게 정비해 올레길로 재탄생한 것이다. 이 곳 뚝방길은 겹벚꽃과 산벚나무 등이 장관을 이루며 도열해있어 사계절 내내 천연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길이다. 마을 어귀에 있는 기와가 단정한 어느 정원에는 약 천 여 가지 꽃들을 볼 수 있는 집이 있다. 그 집 정원으로 들어가본다. 일자형 단아한 한옥집 마당에 가득히 자라고 있는 꽃들과 나무들은 그 수종을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전직 국어과 교사였던 이 집 주인(남명희 씨)은 “예전엔 마당에 꽃을 가꾸는 집들이 많지 않았어요. 거의 푸성귀들을 심었었는데 지금은 예쁜 마당을 지닌 집들이 많아졌어요. 지나가는 이웃들이 정원 멋지다며 자주 들러요. 그들에게 꽃도 많이 나눠 주었어요”라며 “우리 마을은 시내서도 가깝고 보문관광단지권이 가까워 문화생활하기에도 좋은 편이에요”라고 했다.  -“이 동네 살기 좋지. 큰물이 지나. 산이 뭉개지나. 공기도 좋고” 마을 곳곳에는 바야흐로 누렇게 보리가 익고 있었다. 요즘은 보기 힘든 초여름 풍경이라 더욱 색달랐다. 구수한 보리의 내음이 코를 간질이는 듯했다. 또 갓 수확한듯한 마늘이 많이 보였는데 오래된 토박이들의 집들에는 마늘을 거둬들여 그늘에서 한창 말리고 있었다. 약간 경사진 골목길을 오르자 보리농사를 지어 질굼보리를 말려 솎고 있는 할머니를 만났다. 시집와서 지금껏 이곳에서 살았으니 60년이 넘었다고 한다. 에휴...,길게 한숨을 쉬면서. “이 마을은 지대가 높아서 홍수 피해가 없어. 사라호 태풍때도 숲머리마을에서 이곳으로 피난을 많이 왔었지” “이 동네 살기 좋지. 큰물이 지나. 산이 뭉개지나. 공기도 좋고. 그래서 이 동네에 젊은 사람도 이사 많이 왔지” 할머니의 동네 자랑이다. 마을 한 가운데는 관개 시설로 여러 갈래의 농수로들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수로 한 켠에는 동네 빨래터가 아직 남아있었는데 스물 두 살에 이 동네로 시집와서 지금껏 살고 있다는 할머니 한 분이 더러워진 비닐 포대를 씻고 있었다. “예전에는 이곳에서 빨래 많이 했어. 보문호수 물이 내려와 이 도랑을 만드는 거야” 이 동네엔 하루에 버스가 세 번 들어온다고 한다. 차가 없는 어르신들은 버스승강장에서 아침차를 타고 시내병원 등 볼일을 보고 낮차를 타고 들어온다고 한다. 마을 안쪽 좋은 터에는 1996년 준공된 보문회관에 (사)대한노인회 경주시지부 보문분회가 있어 마을 어르신의 쉼터로 기능하고 있었다. -‘앤의 정원’...“한 가지 음식을 하더라도 완벽하게 정성을 다해 제공합니다”// 진평왕릉 능선을 바라볼 수 있는 ‘아무카페’ 마을 구석구석에는 ‘경주KB펜션’이 가장 먼저 들어선 것을 시작으로, 여러 형태의 다양한 펜션들이 들어섰고 트렌디한 카페와 레스토랑 등도 들어서있다. 마을 입구의 제법 높은 언덕위에는 유럽풍 붉은 지붕을 이고있는 ‘앤의 정원’& ‘라그라스 펜션(염혜원 대표)’이 우뚝하게 서 있다. 이곳은 염혜원씨 자매가 운영하는 곳이다. 이들 자매는 독일과 파리에서 메이크업을 공부한 화려한 경력을 자랑하는 전직 메이크업 아티스트기도 하다. 유열, 손지창, 김민종, 한혜진 등을 메이크업 한 베테랑들이다. 손끝이 야무진 그녀들은 요리 솜씨에도 탁월한 감각을 선보인다. 이 집의 대표 메뉴는 명란크림스파게티, 해산물 필라프, 계절 메뉴로 한우 불고기 비빔밥(전날 예약)이다. “한 가지 음식을 하더라도 완벽하게 정성을 다해 제공하자는 것이 저희의 원칙입니다. 가장 신선하고 좋은 제철 재료를 사용합니다. 명란스파게티의 경우도 비싼 재료인 크림과 우유의 비율을 반반으로 해서 진하게 소스를 내고 있습니다” 한편, 앤의 정원에선 프리저브드 플라워(preserved flower, 보존화, 가공화)를 직접 만들어 판매하고도 있다. 마을 한 가운데 위치한 진평왕릉을 한 바퀴 돌면서 갈증이 생겼다면 왕릉 맞은편 보문마을4길에 새로 생긴 ‘아무카페’를 들러도 좋겠다. 카페 2층에선 진평왕릉의 능선을 바라볼 수 있는 전망을 자랑한다. 훤칠하게 생긴 젊은 사장은 서글서글하게 직접 로스팅해 맛있는 커피를 정성껏 내려준다. 경주 시민은 물론, 부산이나 울산서도 이곳을 찾는다고 한다. 초저녁 미풍이 연하게 불고있는 남촌마을은 개구리의 떼창으로 시끄러웠다. 모심기를 막 끝낸 무논에는 마을에 하나둘씩 켜지는 불빛들이 비춰 일렁였고 진평왕릉에도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고즈넉하지만 꽤 큰 마을인 이곳 남촌마을은 살기 좋은 휴양지 같은 동네였다. 옛 전통위에 새로운 문화를 흡수하고 끌어안으며 서로 조화를 이루며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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