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귀로」다방
정민호
그 때는 그랬지, 멋스럽게 기대앉아 종일을 몸을 비비고 차를 마셨지오가는 농담으로 마담과 함께희망곡도 보내고 모닝커피도 마셨지.시인 한하운도 왔었고,가짜 귀하신 몸, 이감석도 앉아경찰서장에 전화 걸어 호통도 치던 그 때 그 시절,「귀하신 몸, 어찌 혼자 오셨나이까?」다음부터 여기 오는 손님은 모두 귀하신 몸,한하운 시인을 만나러 수 십리 길을 걸어오고...붐비던 곳, 그 ‘귀로’다방 2층은늘~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며 오르내렸지. 그 쿵쿵거리는 소리도 추억으로 길 떠나고아득한 세월 속으로 묻혀 사라벼버렸다.옛날 「다방」, 지금은 「커피샵」으로낭만도 없고 멋도 없는 그냥 그대로 남기고「귀로」다방은 멀리 길 떠나고 돌아오지 않았다.
-위대한 낭만시대의 초상 ‘귀로’ 옛 다방은 추억을 소환하는 장소다. 특히 1950년대가 그랬다. 한국 전쟁 이후 1955년부터 전국에 그런 낭만적인 풍경이 펼쳐졌다. ‘네슬레’, ‘제너럴 푸드’ 같은 회사가 생산한 다국적 커피가 우리의 입맛을 다스리며 우아하고 세련된 마담과 미니스커트와 뾰족구두 차림의 레지들이 구수한 향기를 복음인 양 실어날랐다. 예술인, 문인은 말할 것도 없고, 내로라하는 “귀하신 몸들”이 몰려들어 풍성한 담론들을 만들어냈다.
그런 문화 사랑방 역할을 한 ‘귀로’, ‘파초’, ‘청기와’가 경주에 문을 연 것도 1955년 무렵이다. 지금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곳은 ‘청기와’가 유일하지만, 당시 쪽샘과 함께 ‘귀로다방’은 경주를 방문한 멋스러운 남자라면 다 들러봤던 곳이다. ‘귀로’는 고도 경주 일번지인, 경주역에서 형산강으로 이어지는 5차선 화랑로 중간지점 조금 못 미치는 곳, 현재 고바우약국 지점에 위치해 있었다. 얼마나 유명했던 곳이면 ‘경주의 백구두는 귀로다방에 다 모였다’는 말까지 있었을까.
이 시에서는 다방 ‘귀로’를 추억하는 두 가지 사건을 소환해낸다. 첫째가 시인 한하운의 방문이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토길/ 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길 전라도 길.’(「전라도길」)이라는 천형의 아픔을 가진 시인의 방문은 많은 사람들을 “수 십리 길을 걸어오”게 한다.
둘째가, 1957년 “가짜 귀한 신 몸, 이강석” 사건이다. 대통령 아들 행세를 하는 그가 “경찰서장에 전화 걸어 호통”을 치고 경찰서장은 “귀하신 몸, 어찌 혼자 오셨나이까?”로 되받았다나? 그에게 수백만환을 건네고 몸져누운 사람도 있었다는 풍문이다.
시인에게 ‘귀로’는 또 뮤직박스에 “희망곡 보내고”, 푹 꺼진 가죽의자에 “멋스럽게 종일을 몸을 비비고 차를 마시”던 곳이었다. 특히 “늘〜 삐걱거리는 소리”를 내던 2층 목조계단을 오르던 “그 쿵쿵거리는 소리”로 남아 있다. 이 모든 풍경을 거느린 ‘낭만시대’는 스토브 속, 석탄에 피어오르던 그 환한 불꽃과 함께 이제 종막을 고했는가. 「커피샵」으로 간판을 바꾼 찻집에는 “낭만도 멋도 없”다. 그 자리, 그 향기를 풍기는 ‘노포(老鋪)’를 보존하려는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