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전 서편에 있는 나한전에는 부처님과 그의 제자인 16분의 나한을 모시고 있다. 불국사에는 8세기 중엽에 16응진전과 500명의 나한을 모신 500성중전을 건립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1593년 임진왜란 중에 불국사의 모든 전각이 불에 탄 후 1647년에 16나한전이 새로 건립되었으나 이때의 위치는 본래 자리가 아니어서 1760년 원위치로 자리를 옮겼다고 한다. 현재의 나한전은 1979년에 건립된 것이다. 가운데 삼존불 모시고 좌우로 각각 8분씩 16나한을 배치하고 있다.
나한(羅漢)이란 산스크리트어 아라한(Arhat)의 음사(音寫)로 부처님의 제자 중에 수행을 통해 최고의 경지에 오른 분들이다.
소승불교에서는 깨달은 사람을 예류(預流), 일래(一來), 불환(不還), 아라한(阿羅漢)의 4위(位)로 구별하는데 여기에서 아라한 즉 나한은 최고의 위치에 해당된다. 나한은 더 이상 배울 것이 없다는 뜻에서 무학(無學)이라 하고, 진리에 도달했다는 뜻에서 응진(應眞)이라고도 했다. 또 마땅히 공양받을 만한 분이라는 의미로 응공(應供)이라고도 한다.
나한을 모신 전각으로는 나한전, 응진전이 있다. 석가모니불이 주불이 되고 좌우에 석가모니의 제자인 아난과 가섭을 협시로 모신다. 그리고 그 주위에 16나한상을, 양끝에는 범천과 제석천을 함께 봉안하는 경우가 흔하다.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의 경우에는 500나한을 봉안하고 있다. 이곳 불국사 나한전은 석가모니를 주존으로 모시고 양 옆에 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그 좌우로 8분씩 16나한상이 배치되어 있다.
부처님의 제자라고 하면 먼저 떠오르는 분들이 가섭과 사리불을 포함한 10대 제자이다. 10대 제자는 10가지 분야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잘 실천한 인물이다. 그래서 10대 제자는 각 분야에서 제일이라는 칭호를 갖는다. 지혜제일 사리불, 신통제일 목건련, 두타제일 마하가섭, 해공제일 수보리, 설법제일 부루나, 논의제일 가전연, 천안제일 아나율, 지계제일 우바리, 밀행제일 라후라, 다문제일 아난 등이 그들이다.
16나한은 정법을 지키기로 맹세한 부처님의 직제자로 빈두루 바바라타사, 가락가발사, 가라가바리타사, 소빈타, 낙구라, 발타라, 가리가, 벌사라불다라, 술박가, 반탁가, 라호라, 나가사나, 인게라, 벌라바사, 아시다, 주다반탁가 등이다. 이 16나한에 제빌다라와 빈두루 두 존자를 더하여 18나한이라 한다. 또, 부처님의 열반 직후 왕사성(王舍城)에 모여 불전(佛典)을 편찬한 500분의 부처님 제자들을 나한들로 꼽기도 한다.
나한은 그림이나 조각에서 종교적 색채가 짙은 불·보살상과 달리 만드는 이의 개성이 한껏 드러나도록 자유분방하게 표현한다. 그 모습을 규정한 것이 없기 때문에 나한들은 우리 민족의 소박한 심성을 닮은 익살스런 얼굴 표정을 넘어 파격적인 모습으로 제작되었다.
부처님은 재세 시에 수많은 제자들을 두고, 각각 배우고자 하는 사람의 개인차에 맞게 가르침을 베풀었는데, 이를 ‘대기설법(對機說法)’이라고 한다.
『법화경』 ‘약초유품(藥草喩品)’에 의하면 삼천대천세계의 산과 강과 골짜기와 평지에서 자라는 초목과 숲과 약초의 종류가 많지만 각기 그 이름과 모양이 다르다. 비가 내리면 모든 초목과 숲과 약초들의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이 두루 젖는다. 한 구름에서 내리는 비이지만 그 초목의 종류와 성질에 따라 저마다 달리 자라며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같은 땅에서 나고 같은 비에 젖지만 여러 가지 초목이 각기 다른 것이다. 그래서 부처님은 각자의 자질에 맞게 수많은 제자를 가르쳤다는 것이다.
이어령은 ‘베스트 원[Best One]이 아닌 온리 원[Only One]이 돼라’라는 칼럼에서 “한 방향으로 달리면 일등은 하나밖에 없지만 360도의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달리면 360명이 모두 일등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제자들을 Best One이 아닌 Only One으로 가르친 것이었다. 그래서 10대 제자는 지혜제일, 신통제일, 두타제일 등으로 각 분야의 제일이라는 칭호를 갖게 되었다. 오늘날 교육에 임하는 사람들이 새겨야 할 것이다. 이 나한전의 서편과 뒤편 공터에 수많은 돌탑이 있다.
『법화경』에서는 ‘어린 아이가 장난으로 모래탑을 쌓더라도 한량없는 복락을 받아 부처가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옛적부터 돌로 작은 탑을 만들어서 자신의 소원을 기원하는 풍습이 생겼다. 이 작은 돌탑을 쌓은 이 모두가 원하는 바를 이루었으리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