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흔의 창시자 도예가 지산 이종능이 새로운 30년 도자기 인생의 출발을 고향 경주에서 시작했다. 경주보문단지에 위치한 황룡원 중도타워 건명홀에서 지난 21일 도예가 이종능의 ‘빛은 동방에서 芝山 李鐘能 陶作 三十五年展’ 오픈식이 성황리에 진행됐다. 이번 전시에서 도예가 이종능은 독창적인 도자세계인 토흔 작품과 차 도구를 비롯해 달항아리, 회화의 영역을 개척한 벽화 작품 등 100여점을 선보였으며,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작품에 몰입하며 감탄사를 연발했다. 선화가인 양산 통도사 문수암 수안 스님은 이날 이종능 도예가의 전시 축하 및 새로운 30년을 축원하며 선화 한점을 선물했다. 수안 스님은 “지산 선생의 예술성을 담은 도자기로 하여금 국내외 많은 분들에게 밝고 기분좋은 봄의 빛을 선사하길 바란다”라고 작품의 의미를 설명했다. 도예가 이종능은 “단지 흙이 좋아서 이 길을 걸어왔고, 아직 부족한 점도 많다. 그래서 예술가라고 불리는 것이 한편으로 부담스럽다. 그래서 예술이라는 것은 부족함과 절실함이 만든 따뜻한 행복이 예술이라고 정의해본다”라면서 “오늘 이 자리에 귀하신 분들 모시고 전시를 여는 만큼 앞으로 제 행보가 잘못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정진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도예가 이종능의 작품에는 천년고도 경주의 혼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는 경주 어느 곳에서나 만지고 느낄 수 있는 우리 문화유산의 색과 향, 천년 세월을 품은 에밀레종의 맥놀이 음과 함께한 그의 유년생활이 녹아 있다. 그동안 뉴욕, 워싱턴, 런던, 도쿄, 오사카 등 세계 각국에서 도예전을 개최해오며 각국 최고의 큐레이터와 예술가 그리고 유력 방송 등 언론매체를 통해 선생의 독창적인 작품세계와 한국의 미를 전 세계에 알려왔다. 일본 도예전문 기자가 그에게 스승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 그는 ‘나의 스승은 자애로운 나의 어머니요. 천년 고도 경주요. 대자연이다’고 답했다. 주변에 산재돼 있는 신라 천년의 문화유산이,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에밀레 종소리가 그의 유년시절의 감성의 바탕이 됐기 때문이다. ‘어떤 계파나 장르에도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는 창작 욕구를 자유분방하게 표현하는 도예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도예가는 대학4학년 때부터 한국 도자기의 메카인 경기도 이천에 방을 얻어놓고 본격적인 흙 수업을 시작했다. 우리 도자기 문화에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인 90년부터는 93년까지 하던 작업과 대학원 진학을 접어두고 일본, 대만, 중국, 태국, 몽고는 물론 실크로드까지 답사하며 북방문화와 남방문화의 흐름을 3년 동안 몸소 체험하면서 열정적인 연구를 거듭했다고. 특히 일본의 도요지를 답사하고 일본 박물관에서 우리 선조의 얼과 예술적 깊이가 담긴 도자기를 보면서 우리의 문화재가 강제로 건너오는 과정을 떠올리며 쓰린 가슴을 달래기도 했다. 또 중국의 명차 산지인 운남성과 명요를 몸소 체험하며 도자기란 무엇인가에 대한 화두를 끊임없이 던지며 동양 3국의 도자 문화의 깊이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왔다. 부단한 열정과 끊임없는 노력으로 국제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한 것은 2002년, 그해 열린 부산 아시안 게임에서 그가 한국의 대표작가로 선정돼 도예 초대전을 연 것을 비롯해 2002년 KBS·NHK 합작 월드컵 홍보다큐멘터리 ‘동쪽으로의 출발’에서 한국도자기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림과 동시에 한일 문화교류에 이바지하게 됐다. 1995년 첫 번째 개인전을 시작으로 이날 21번째 개인전을 맞이한 도예가 이종능에게 흙 작업은 직업이 아닌 길동무다. 자신만의 흙의 세계를 만들어 가기 위해 끝임 없이 자신과의 경쟁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으며, 종교와 사상, 어느 고매한 정신과 현대과학으로도 재단할 수 없는 그의 작품은 곧 경주의 자랑이자 대한민국의 자부심이다. 현재 그의 작품은 러시아 피츠버그 국립민속박물관, 중국 항주 국립다엽박물관, 일본 오사카 역사박물관 등지에 소장돼 있으며, 사랑과 자유, 평화, 행복 그리고 시작의 의미가 담긴 이번 전시는 오는 6월 10일까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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