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시계로 작동하면 삼라만상의 모든 것들은 변화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을 수가 없다. 생명이 있는 것들은 자라고, 성장하고, 또 주변에 영향을 끼치기 시작한다. 인간도 생명을 가지고 있으므로 변화하고 성장을 하지만 유독 다른 어떤 생명체보다 더 많이 자기종족들을 비롯하여 동물의 세계, 식물의 세계 또는 광물과 무생물의 세계까지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 특히 인간의 세계는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더 나은, 또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달려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인간이 가진 창조성은 동식물과는 달리 함께 나아가는 협력보다는 경쟁을 통해서 더 빠르고 급속한 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큰 시대적 변화를 겪지 않던 과거시대에는 생존이나 유지를 위한 앞선 세대의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과 더불어 인간다움을 잘 유지하는 도덕성에 대한 교육을 앞세움으로써 느린 발전 속에서도 국가와 선지자들은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의 시대에는 Big data, AI, IoT, 자율주행, 5G 스마트폰 등으로 인해 만들어진 정보보다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고, 급속도로 만들어질 정보가 거의 홍수의 수준이다. 이런 정보와 기술의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세대는 과거에 많은 경험과 지식을 보유하던 존경의 대상에서 오히려 현대의 정보를 따라잡지 못하는 밀린 세대가 되어버렸다. 즉 경험과 문화의 도덕적 가치를 지닌 선배세대들이 그 위상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자연히 도덕의 의미와 인간 질서를 만들어가는 진짜의 교육은 흔적을 찾기가 힘이 들고 가정과 학교에서도 현대의 물질문명을 선도하는 정보를 따라잡기에 바쁘다. 그래서 요즈음 교육을 하는 모든 곳에서의 키워드가 4차 산업혁명이 요구하는 인재육성에 맞춰져 있다. 인간다움과 인간의 질서가 우선이 아닌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맞는 역량 기르기로 본말이 전도되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지식과 정보사회에 적응하고 시대를 이끌어가는 인재가 되기 위해 배워야 하는 것에는 동의한다. 필자가 말하는 교육은 옛것만을 고수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 인간과 인간, 인간과 환경, 인간과 세계가 조화를 이루기 위해 필수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품위 있는 인간의 활동이다. 교육은 타협의 대상이 아니라 세상과 협상을 해 나가는 품격 있는 인간 기르기이다. 그러므로 4차 산업혁명에는 인간다움을 찾아가는 교육이 선행되어야 한다. 고도의 물질문명인 AI등에게 인간이 자신의 활동력과 의지를 내주고 있는 현실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 기계와 기술에 우리의 전부를 내어주기보다는 인간이 스스로를 통제하고 사회를 통제하고 기술을 통제하는 주인공이 되는 교육이 필요하다. 교육은 시소에서 균형을 잡아주는 축과 같다. 아무 일 없는 평온함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쪽에 힘이 쏠리면 그것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 시소에서 축의 역할이다. 이렇듯 교육이란 개인의 삶의 건강한 균형과 사회의 건강한 균형을 만들어 가는 작업이다. 급속한 시간의 변화로 일어나는 많은 현상들의 균형을 잡아주는 일이기도 하다. 변화무쌍하고 혼돈의 시기인 듯 하더라도 균형을 맞추어 가고 조화를 만들어 가는 중심점이 바로 교육을 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정치와 타협해서는 안 되며, 상업주의와도 타협을 해서는 안 된다, 어느 순간 교육이 정치논리와 시장논리에 휩쓸려가면서 베스트셀러로 둔갑한 책들이 필독서가 되어있다. 진중한 무게중심을 잡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시소의 한쪽이 지나치게 높이 올라가게 되면 전체가 무너지게 되고 자리를 이탈하게 된다. 그러므로 시소에서의 축은 단단해야하고 유연성이 있어야 한다. 막혀 있어도 안 되고 고정되어 있어도 안 된다. 너무 헐거워도 안 된다. 딱 적절한 만큼의 아무리 진동과 충격이 심하더라도 잘 버티고 있는 시소의 축처럼 그 무게중심을 잡아가는 힘. 교육의 힘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국가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논하지만 그 목적과 가치에 대한 막연한 생각으로 시행되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늘 가정교육이 문제이고, 학교교육이 문제이고 사회에서의 모든 것들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깔려있는 듯하다. 교육은 누구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탓하기 위해서 시행하는 것이 아니다. 각자의 자리에서 각자의 무게중심과 균형을 잡아가는 선택과 판단을 하기 위해서 우리는 우리를 가르치면서 스스로 부단히 애써야 한다. 즉 배우는 자기 자신의 문제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칸트(1724~1804)가 교육학 강의(1804)에서 한 말을 되새김질 할 필요가 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개선하는 것, 자기 자신을 기르고 육성하는 것, 그리고 자신이 악하다면 자기 자신으로부터 도덕성을 생성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인간의 사명이다. 그러한 인간의 사명에 대해 깊이 숙고해 본다면,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교육은 인간에게 부과될 수 있는 과제 중에서 가장 중하면서도 가장 어려운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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