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부터 품었던 꿈 중에 해외여행도 있었다. 커다란 배낭 하나 둘러메고 까칠한 턱수염과 삐죽한 머리지만 눈앞에 펼쳐진 색다른 풍물을 하나씩 경험해 보는, 그런 배낭 여행자가 꿈이었다. 그저 두어 권 읽었었던 여행 책으로 짜깁기한 상상이었지만 눈을 감는 순간 나는 스위스 융프라우에 올라갔다가 터키의 파묵칼레를 어슬렁대곤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이 병은 학창 시절 때 극에 달했다. 가슴은 터질 것 같은데 현실은 무섭도록 단조로웠던 그 선명한 콘트라스트 때문인지 모르겠다. 거의 일주일 동안 보는 중간고사가 코앞일 때 그랬다. 점심 먹고는 어김없이 시작되는 오후 수업 시간, 졸린 눈을 힘겹게 들어 올리다 우연히 푸른 하늘을 바라볼 때 그랬다. ‘아, 저 멀리 훨훨 날아가고 싶다’ 군에서 제대를 하고 이틀 만에 훌쩍 떠났다. 배낭 하나 달랑 매고 무작정 떠났다. 더 이상 까까머리 그 치기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훌쩍 떠나고 싶었다. 인터넷이든 스마트폰이 없던 그 시절엔 여행객들은 죄다 야구 모자에 가슴엔 덜렁대는 카메라, 손에는 가장자리가 낡은 지도가 꼭 들려 있었다. 도로가 얼마나 넓은지 횡단보도와 횡단보도가 서로 섞여 있는, 바쁜 듯 총총걸음으로 오가는 양복 입은 사람들 어깨를 수시로 부딪치는 그 자리에서 난, 그 옛날 내 하늘을 쳐다보았다. ‘아, 내가 이렇게 나왔구나’ 여행객의 눈은 선하다. 그럴 수밖에 없다. 화장실 찾는데도 버스 한번 타는데도 물어보고 또 물어봐야 하는 신세다. 저 사람이 가르쳐 주는 길이 과연 맞을까 하고 의심할 여유조차 없다. 마치 엄마를 바라보는 아기의 순수한 눈을 한 체 여기서 저기로 이동하는데 끝없이 도움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아이처럼 해맑아진다. 아이처럼 웃고 아이처럼 조바심 냈다. 여행은 그렇게 나를, 순수했던 나를 찾아가는 순례길이었다. “관광객 여러분, 당신의 호화스러운 여행은 내 일상의 고통입니다(Tourist : your luxury trip, my daily misery)” 따스한 파스텔 톤으로 잘 나가다가 난데없이 무슨 날벼락같은 소리냐고? 스페인 바르셀로나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 어느 벽면에 누군가 검은색 페인트로 휘갈겨 쓴 글이다. 나를 포함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는 해외여행에는 하나의 불문율이 있다. 프랑스 에펠탑, 미국 자유의 여신상, 호주의 오페라 하우스처럼 유명한 랜드마크(landmark:국가나 도시, 특정지역을 대표하는 시설이나 건축물)를 배경으로 사진 찍기다. 앞에서 찍던 옆에서 찍던 중요한 것은 ‘나, 여기 왔어!’하는 식의 ‘인증샷’ 성격이 강하다. 그러니 유명하고 잘 알려진 곳만 간다. 물론 아닌 경우도 많지만 무리하게 일반화를 시키자면 그렇다. 이를테면 통시사적(通時史的) 접근법이다. 승리자나 사이즈·볼륨이 큰 것들에 대한 선호(選好)다. 피라미드를 생각해 보라. 모래벌판에 그 크고 웅장한 구조물이 우뚝 서 있으려면, 무수히 많은 민초들의 피, 땀, 눈물, 그리고 그들을 억압하는 절대 권력과 폭정 등이 전제되겠지만 카메라를 든 우리 눈에는 웅장하고 멋진 사진일 뿐이다. 해외여행 문화가 어느덧 성숙한 지금, 우리가 외국을 바라보는 방식은 미시사적(微時史的)으로 진화됐다. 건물이나 그런 유명한 하드웨어는 이미 알고 있으니, 이제 그들이 먹는 음식과 사는 방식이 궁금해진 것이다. 건물 외벽만 보다가 이젠 그 속 사랑방이 건넌방이 궁금해진 거다. 문제는, 이방인이고 관광객이기에 괜찮다고 셀프 면죄부를 주고는 마음껏 그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데 있다. “관광객 여러분, 당신의 호화스러운 여행은 내 일상의 고통입니다”는 그 과정에서 나온 절규다. 관광객들이 몰려들려 사진을 찍고 빠져나가면 산더미 같은 쓰레기만 남는다. 주민들을 위한 식료품 가게는 관광객을 상대로 한 기념품 가게로 바뀌었다. 관광객들이 많이 오기만을 바라던 때가 있었다. 이제 주민의 삶의 터전과 관광객의 여행 목적지가 어떻게 공유되며 효과적으로 운영될 수 있는지 본격적으로 고민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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