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 전 8월 여름 신라 궁궐의 일부 풍경을 그린 복원도가 제시돼 관심을 끌고 있다. 월성 해자에서 출토된 신라시대 씨앗 및 열매, 각종 구조물의 흔적과 당시의 규조(물에 사는 식물성 플랑크톤) 등을 토대로 한 과학적인 분석의 결과물이어서다. 특히 고환경연구의 궁극적인 목표인 ‘경관의 복원’을 과학적인 근거로 복원한 초기 성과로 주목된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지난 2일 ‘5세기 어느 여름, 월성해자’라는 이름의 복원도를 공개했다. 그림에는 5세기 해자 안에 가시연꽃과 다른 수생식물이 꽃을 피우고 있는 8월의 모습을 그렸다. 수혈해자는 나무기둥 사이를 판재로 연결해 흙의 유실을 막고 내부에는 물이 채워져 있고, 이 구조물 주변은 습한 환경에 잘 자라는 식물이 낮게 자라 시야가 트여 있다. 뒤편에는 느티나무의 싱그러운 녹음이 펼쳐지고 있는 모습을 담아냈다.
연구소는 해자 내부 흙을 1㎜이하의 고운 체질로 걸러 식물의 씨앗과 열매를 모았다. 지금까지 총 63종의 신라의 씨앗과 열매도 확보했다. 이는 국내 발굴조사 가운데 가장 많은 수량이다.
그리고 해자 주변 넓은 범위에 분포했던 식물자료를 알아보기 위해 화분분석(퇴적물 속 옛 꽃가루나 포자 추출, 종류와 비율 등을 조사해 과거 식물군락 변천, 기후환경 등 추정)을 실시했다. 그 결과 물 위의 가시연꽃, 물속에 살았던 수생식물, 해자 외곽 소하천(발천)변의 느티나무 군락 등을 파악했다.
또 물의 흐름‧깊이‧수질을 알려주는 당시의 규조를 분석해 해자에 담겼던 물의 정보도 분석하고 있다. 이 같이 해자 내부에서 발견된 식물자료 등을 토대로 연구·분석을 통해 1600년 전 월성해자 내부와 주변 경관을 그려낸 것이다.
이종훈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장은 “씨앗과 꽃가루 분석 결과 해자 인접한 주변에는 초본류, 풀이 주로 자라는 환경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비교적 시야가 확보된 공간이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는 해자 속 발견된 규조류 분석결과 계속해서 햇빛에 노출됐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즉 해자 주변에 나무가 없어 햇빛에 노출되기 쉬운 환경이었고, 해자 인근은 낮은 수생식물들이 자라면서 시야가 트였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또 이곳에서 화분분석을 통해 확인된 느티나무 씨앗과 꽃가루는 지금의 계림과 소하천인 발천 일대를 중심으로 느티나무 숲이 있었다는 단서가 된다고 밝혔다. 이런 느티나무 숲은 남천변이나 형산강변 등의 평지에서 숲을 이루는 경관의 주요한 요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자에서는 이밖에 참나무와 소나무 꽃가루도 확인돼 해자에서 느티나무 숲을 지나 더 먼 곳에는 참나무와 소나무 숲이 존재하는 것으로 복원했다.
이종훈 소장은 “참나무와 소나무 꽃가루는 원거리를 날아올 수 있기 때문에 월성 인근에서 나온 꽃가루로는 볼 수 없다”며 “하지만 느티나무는 씨앗과 꽃가루가 같이 발견되고 있어 월성과 가까운 곳에 있었을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또 지난해 해자 기슭에 흙이 유실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수혈해자 북벽에 조성한 목제구조물도 복원도에 그려 넣었다.
이 목제 구조물은 수혈해자 바닥을 파서 1.5m 간격으로 나무기둥을 세우고 그 사이에는 판재로 연결한 흔적을 확인했다. 최대높이 3m의 나무기둥과 최대 7단의 판재가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 같은 흔적 발굴로 삼국통일 이전 대규모 토목공사가 이뤄졌음을 확인한 것.
연구소측은 “신라의 목제 구조물 전체가 확인된 최초의 사례로, 당시의 목재가공기술을 복원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종훈 소장은 “유적에서 확인되는 과거의 지형과 동·식물상을 토대로 연구를 통해 5세기 당시 월성해자를 복원해보았다”면서 “앞으로 보다 면밀한 검토를 통해 단순한 유적만의 복원이 아니라 경관의 복원까지 구체적으로 시도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