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에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고 너무 행복하다. 지금까지 나자신의 삶을 평가한다면 50점 밖에 줄 수 없지만 남은 생을 100점을 위해 경주에서 열심히 살고 싶다"는 권윤식(69) 선생. 단상 위의 교사로, 언론사의 주필로, 수필가로, 철학자로, 소설가로, 작사가로서 70평생을 욕심 없이 살아온 삶. "지금까지 시냇물 흐르듯 살아왔다"는 권윤식 선생은 경주중·고등학교, 고려대학교 문리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지난 62년 상주고교를 시작으로 96년까지 근화여자중·고교, 울산 대현중학교, 경주고등학교에서 34년 동안 교편 생활을 했다. 자신의 모교인 경주고등학교를 지난 96년 글을 쓰겠다는 핑계로 만 5년이 남은 정년까지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모교인 경주고등학교 교직을 떠난 권 선생은 퇴임 이 후 지방신문의 칼럼리스트로, 주필로 왕성한 활동을 했다. 멋과 여유를 인생 철학으로 삶고 교편시절 틈틈이 습작한 글들이 어느덧 작품이되고 그런 작품이 문학세계 수필당선으로 문단에 데뷔하게 된다. 또 희곡 `신의 원죄`를 무대에 올린 바 있는 권 선생은 지난해 12월에는 경주시문화상 문학부문을 수상했다. 어린 시절부터 살림걱정 없는 가정형편에서 자란 탓에 풍유와 희락을 음미하며 음유시인으로 가정보다는 세상사에 관심이 많았던 권 선생. 때문에 아내와 아이들에게 항상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뒤늦은 후회도 해보지만 "그리 후회된 삶은 아니었다"고 자찬한다. "학창시절 철학을 전공한 탓에 고교 교편시절 영어, 독어, 국어, 역사, 윤리 등 전공 이외의 과목을 소위 닥치는 대로 제자들을 가르쳐 늘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권윤식 선생은 "제자들이 못난 선생한테 배워 성공했다며 소주 한병 들고 인사 올 때가 가장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직도 습작을 게을리 하지 않고 문학에 관심이 많은 권 선생은 한국문인협회, 경주문협 회원으로 경주문화원 이사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죽을 때까지 붓대하나 들고 한 세월 음풍농월을 즐기겠다"며 웃음을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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