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은 전쟁처럼  -오세영  산천은 지뢰밭인가봄이 밟고 간 땅마다 온통지뢰의 폭발로 수라장이다.대지를 뚫고 솟아오른, 푸르고 붉은꽃과 풀과 나무의 여린 새싹들.전선엔 하얀 연기 피어오르고아지랑이 손짓을 신호로은폐 중인 다람쥐, 너구리, 고슴도치, 꽃뱀…일제히 참호를 뛰쳐나온다.한 치의 땅, 한 뼘의 하늘을 점령하기 위한격돌,그 무참한 생존을 위하여 봄은 잠깐의 휴전을 파기하고 다시전쟁의 포문을 연다. ============================================================== -생명의 아수라장인 봄의 전쟁 봄을 이렇게 강렬하고 격하게 표현한 시를 읽는다. 봄이 전쟁이라니? 이 비유는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는다. 아니 역설처럼 보인다. 그래서 너 놀람을 준다. 시인은 예상하지 않은 곳에서 충격을 주는 존재다. 실제로 어떤 시인은 “과목에 과물들이 무르익어 있는 사태처럼/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박성룡, 「果木」)고 쓰기도 했다. 이 시는 전쟁의 용어들을 사용하여 전쟁의 상황들을 아우르며 압축된 서사가 진행된다. 봄은 지뢰밭처럼 생명들을 터져나오게 한다. 그가 밟고 지나간 자리마다 폭발로 수라장이다. 그러나 그 폭발의 아수라장은 찢겨진 신체와 피, 기물들 대신에 “대지를 뚫고” “푸르고 붉은/꽃과 풀과 나무의 여린 새싹들”이 여기저기서 팡팡 터져 나오게 한다. 생명의 전선엔 “하얀 연기”인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이를 신호로 언 땅이라는 참호를 뚫고 “다람쥐, 너구리, 고슴도치, 꽃뱀…”가 일제히 뛰쳐나온다. 기나긴 겨울 동안 그 생명들은 얼마나 움츠렸던가? 봄이 불러주기를 얼마나 기다렸을 것인가? 봄의 호출에 그들은 “한 치의 땅, 한 뼘의 하늘을 점령하기 위한” 싱그러운 생명의 “격돌”을 시작한다. 격돌로 표현된 “무참한 생존”은 부수는 것이 아니다. 물오른 생명성이다. 시인은 2연에서 시 전체를 압축하는 두 줄을 배치한다. “봄은 잠깐의 휴전을 파기하고 다시/전쟁의 포문을 연다.” 대지와 자연 사이에 생명의 전쟁이 없었던 겨울의 휴전을 파기라도 하듯 온갖 꽃들이, 초목들이 포문을 여는 것이다. 시인은 같은 제목의 다른 시에서 전쟁을 “여든 살 삭정이도 무릎을 일으켜 세우”고 “아무도 안 죽고 무덤마저 살아나는 전쟁”이라고 했다. 못 참겠다. 그 전쟁을 보러 뛰쳐나가야 겠다. 이 화려하고도 율동적인 포화, 그 생명의 전쟁이 들창 너머로 막 뿜어져 나오고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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