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역 철로변, 일제강점기 경주역에서 근무하던 철도원들 수용하던 집단관사(官舍) 발견 황오동 경주역 철로를 바로 앞에 두고 있는 동네엔 유독 관사들이 많았다. 1936년 전후로 조성됐다고 추정되는 황오동 집단 관사는 경주역에서 근무하던 철도원들을 수용하던 대규모 주거 단지였다고 한다. 당시 관사의 틀이 아직도 고스란히 보존돼 있었는데 경고지하도를 중심으로 ‘앞관사, 뒷관사’라고 불린다고 한다. 대개의 집단관사는 70~80년 된 집들이다. 얼핏 보아도 박공지붕의 주택들은 다분히 일본집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이런 관사중 한 곳에 세 들어 산다고 하는 어르신의 도움으로 관사의 내부도 구경할 수 있었다. 일본식 마루와 회랑, 다락도 고스란히 간직한 집이었다. 관사들은 리모델링된 상태이거나 혹은 당시의 모습 그대로 남아있었고 비어있는 집도 있었다.
골목에서 만난 어르신은 “일제때 일본인들이 사는 관사를 지어서 동네 이름이 ‘관사’야. 지금이야 도로명으로 다 바뀌었지만 우리가 관사 산다고 하면 다 알아들어요. 이제는 모두 개인의 집들이지” 라고 했다. 기자도 처음 알게 되는 관사동네 이름의 유래였다. 관사는 박공지붕이 길게 이어져있고 크고 작은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으며 몇 가구가 이어져 살고 있는 형태였다. 이국적 건축 양식이 남아있는 이곳 관사 골목은 경주에서 진귀한 골목이었다. 그 흔적은 ‘관사 세탁소’, ‘관사 참기름’ 등의 작고 허름한 가게들의 이름으로 남아 오늘에 유전하고 있었다.-‘여행하다 불쑥, 산책하다 불쑥’...관사 동네 목욕탕술집에서 만나는 기분좋은 흥청거림
앞관사 동네에서 오후 6시를 넘기자 재밌는 술집을 발견했다. 오래된 옛 목욕탕을 뉴트로 술집으로 개조한 곳이었다. 남탕여탕이라는 글씨도 예전 그대로고 목욕합니다 라는 작은 팻말도 그대로 세워 두었다. 욕탕 등 원래 목욕탕 내외부를 그대로 살린 컨셉트인데 최근 인스타 핫플레이스로 등극한 이곳은 여행자 술집을 표방하는 ‘어제, 아래’라는 술집이다. 여행하다 불쑥, 산책하다 불쑥 들르란다. 서울서 왔다는 여행자 커플도 마침 이곳을 찾고 있었다. 벌써 입소문이 자자한 듯. 기분좋은 흥청거림이 들끓었다. 여행자들이 도심에서 즐길만한 술집이 없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어왔던 차였는데 여행객들의 술 허기를 달래줄 명소로 부각할 듯 싶다.-벚꽃 휘날리는 풍경 즐기며 조용하게 혼자 책보기 안성맞춤인 카페 ‘예스터데이’// 동네에서만 42년 영업한 터줏대감격 ‘미진 미용실’
양정로 전랑사지 근처 조용한 한옥들 사이, 한옥 한 켠에 아담한 카페가 자리하고 있다. 문을 연 지 1년이 넘은 이곳 ‘예스터데이’는 미소가 이쁜 주인이 진한 커피향을 선사한다. 주인장은 인적이 드문 이곳 벚꽃길을 즐겨 산책하다가 우연히 이 한옥을 만나 한쪽에 커피집을 차렸다고 한다. 오전에 커피 수업을 가지는가 하면, 타르트 등도 직접 구워 커피와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한다. 무엇보다 젊은 주인장 내외가 수집한 오래된 고서를 비롯한 헌책들과 LP음반 등으로 꾸민 이 카페는 다분히 아날로그적이다. 이것은 단골들이 꾸준하게 찾는 이유기도 하다. “예전 필름 카메라 들고 혼자 오시는 분도 많아요. 관광객도 더러 오시구요” 벚꽃 휘날리는 가로(街路)의 풍경을 즐기면서 조용하게 혼자 책보기 안성맞춤인 예스터데이는 언제나 옳다. 한편, 이 카페 인근 선덕여고 사거리 근처에는 대형 카페가 입점 준비 중이라고 한다. 바로 맞은편 도로변에는 지난해부터, 골동품 나들이를 할 수 있는 상설골동품 경매장이 들어서있고 매주 목요일마다 경매에 참여할 수도 있어 진귀한 물건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카페 예스터데이 옆 아주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다보면 작고 소박해보이는 ‘미진 미용실(원효로 207번길)’이 나타난다. ‘고데, 컷트, 파마, 드라이’ 라고 씌어진 간판에서 한 눈에도 이 동네 터줏대감격 미용실임이 짐작됐다. 이 날도 할머니 두 분이 퍼머를 하고 있었다. “이 부근 할머니들 다 와요. 전 용강에서 이곳까지 왔어요. 택시기사도 이 집 모르는 이가 없어요. 여기엔 할머니들뿐만 아니라 멋쟁이들도 자주 와요(웃음)” 올해 72세인 이 미용실 원장은 바로 이 동네 전랑지에서 자란 토박이라고 한다. 54년 미용업 경력 중 42년을 이 작은 미용실에서 영업했다면서 “여든 넘은 할머니들은 더욱 저렴하게 받아요. 커트 5000원, 퍼머비 1만5000원이지요. 고데기로 하는 올림머리는 특히 자신 있어요”라고 한다. 낡은 듯한 고데기도 닳아서 오래됐지만 이 미용실의 산 역사임을 방증하고 있었다.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이 미장원에 오면 화초를 많이 키우고 있는 미장원 옆집에 꼭 들른다는 할머니 손님 따라 얼떨결에 동행하게 됐다. 햇살이 유난히 잘 드는 2층 아담한 양옥 주택에는 널따란 마당이 있어 양껏 화초들이 자라고 있었다. 다육이들이 많아 더욱 정갈해보였다. 주인 할머니는 버려진 꽃을 지나치지 못해 주워 온 꽃들도 많다고 한다. 사람 사는 냄새 진한 이 동네서 꽃 잘 키우는 할머니로 유명하다고 했는데 ‘물하고 하이타이는 못 아낀다’는 할머니부부의 옷가지들이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래줄에 널려있어 어린시절 풍경을 소환해주었다.-빈티지한 소품들과 엔틱한 장식 많아 이래저래 범상치 않은 카페 ‘헤이븐’// ‘일상, 책방, 마을, 생태’를 지향하는 동네서점 ‘오늘은 책방’
또 한 곳 전랑사지를 마주보고 있는 곳에 카페 ‘헤이븐’이 있다. 경주고 후문 쪽 전랑지의 전망을 바라볼 수 있는 헤이븐은 개업한 지 일년째라고. 서부 텍사스에서 툭 튀어나온듯한 주인장은 이래저래 범상치 않다. 주인이 손수 인테리어 한 카페내부는 독특했다. 허름한 창고를 개조했다는 이곳은 빈티지한 소품들과 엔틱한 장식들이 주요 컨셉으로 보인다. 탁 트인 전랑지 공터를 정원삼은 전망을 카페 안으로 끌어들인 너른 내부공간을 지나면 작은 비밀공간인 듯한 공간이 따로 있어 더욱 매력적이다. 오래전부터 커피 애호가였던 그는 고가의 희귀한 핸드밀 등 흔히 볼 수 없는 소품들을 소장하고 있었는데 이들을 구경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파스타, 스테이크 등 든든한 한 끼 식사도 즐길수 있다고 한다. 멋진 주인장도 만나고 감성도 돋굴수 있는 헤이븐에 들러 커피 한 잔의 사치를 부려보는 것도 ‘소확행’일 듯.
경주고등학교 후문 근처 원효로 163번길에는 동네서점인 ‘오늘은 책방’이 있다. 옹기종기 한옥들 사이 작은 골목 안에서 문득 발견하게 되는 간판은 발길을 맘추게 한다. 기역자 한옥의 대문 앞 간판은 참으로 작아서 어여쁘다. 알려지지 않은 골목길 안 깊숙이 있어 찾기 쉽지 않을 것 같지만 이 책방의 그윽한 향기는 이미 널리 퍼져있다. ‘일상, 책방, 마을, 생태’를 지향하는 이곳에선 헌책과 새책을 함께 다루며 ‘소리내어 책읽는 모임, 대하소설읽기모임, 작은 상영회, 자연농 모임, 잡지 모임’ 등의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한편, ‘카페 딘’은 경주고를 지나다보면 좁은 골목길 끝 작은 주택에 2층 공간을 만들어 커피를 마실수 있도록 만들었다. 이 카페 주인 아들이 벽화를 그렸다고 하며 카페주인은 민화를 그리고 아트 상품을 제작하며 손님을 맞이하는 이색적인 공간이다.
-조용한 변화 감지...원주민과 조화 이루며 서로 상생하고 보존과 개발 또한 숙고해야 ‘코레일 한국철도공사 경주기관차 승무사업소’ 라는 간판을 지나 경주역 급수탑을 지난다. 일명 물탱크라 불리는 이 급수탑의 존재는 다시 한 번 근대의 한 자락에 닿도록 환기시켜준다. 다른 지역의 급수탑처럼 등록문화재로 등록되기를 바래본다. 이어지는 큰 도로변에는 ‘강변 슈퍼’라는 좁고 낡은 구멍가게격인 슈퍼가 하나 있다. 슈퍼 앞 각자가 타고 온 듯한 자전거 몇 대를 세워두고 할아버지 몇 분이 둘러앉아 낮부터 소주 한 잔에 걸쭉한 농들이 오간다. 한편 경고 지하도를 지나 약 1000여평의 ‘정화제재소’를 만날 수 있다. 도심 속 이질적 공간이다. 통나무들의 화려하고 다양한 변신이 이곳에서 이뤄지고 있는데 제재소가 최근 불황 속에서도 약진하고 있었다. 소중한 이곳이 늘 성업중이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했다. 조금씩 조용하게 변화가 감지되고 있는 황오동. 젊은 청춘들이 하나씩 작지만 알차게 황오동 후미진 골목을 밝히고 있었다. 원주민과 조화를 이루며 서로 상생하고 보존과 개발 또한 조화를 이뤄나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