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5대 국경일은 삼일절(3월 1일), 제헌절(7월 17일), 광복절(8월 15일), 개천절(10월 3일), 한글날(10월 9일)이다. 삼일절, 제헌절, 광복절, 개천절 등 4대 국경일 노랫말은 민족의 얼을 지킨 교육자이자 언론인인 정인보 선생, 한글날은 국어운동가 최현배 선생이 작사했다. 국경일 노래는 경축의 노래이지만 그 한 끝에는 슬픔이 묻어 있다. 국권을 상실했던 시절 아픈 기억이 서려있기 때문이다. 먼저 삼일절 노래는 1절로 구성돼있다. 노랫말 첫 3행 ‘기미년 삼월일일 정오’에는 온 겨레가 태극기를 들고 독립만세를 부르던 장엄한 풍경과 감동을 전하고 독립선언의 의의를 담고 있다. ‘이날은 우리의 의요, 생명이요, 교훈이다’는 독립선언 그 자체가 정의의 실현이고 우리가 실천하는 정의이며, 우리가 지닌 정당한 생명의 발로이며 지향해야 할 길의 의미를 담아 노랫말 한 글자마다 뜻이 단단하고 높다. 우리나라 최초의 헌법 제정을 기념하는 날인 제헌절 노래에는 개천절 노래와 같이 제1절에 단군의 고사를 원용한다. ‘비, 구름, 바다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 ‘우리 옛적 삼백예순 남은 일’이라는 가사는 모두 단군의 아버지인 환웅이 풍백, 우사, 운사를 거느리고 농업과 치병과 선악의 판별 등 360가지 인간사를 관장해 세상을 다스리고 교화했다는 옛 기록을 상기한다. 그 다스림이 ‘하늘 뜻 그대로였다’는 것은 옛 법도의 종교적 성격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세상이 마땅히 지녀야 할 좋은 법의 보편적 성격을 말하려는 것일 테다. 그래서 우리가 최초로 제정하게 된 민주 헌법도 ‘옛 길에 새 걸음으로 발맞추리라’는 인간의 보편적 지성을 실천할 것이기에 ‘대한민국 억만년의 터’가 된다. 비유체계가 뛰어나다. 광복절 노래는 모호한 구절이 없지 않다. 해방의 기쁨을 말하는 ‘흙 다시 만져 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에 이은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이 구절이 필경 광복을 보지 못하고 눈감아야 했던 선열들을 안타깝게 추모하는 마음의 표현인 것은 다음 구절 ‘이 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로 알 수 있다. 마지막 구절 ‘길이길이 지키세’에도 목적어가 없다. 그러나 그것이 다시 회복한 조국의 광영이며, 다시는 빼앗길 수 없는 이 나라의 국권임을 모를 수는 없다. 이 과감한 생략법은 그날의 감격에 대한 직접적인 표현이기도 하다. 개천절 노래는 물에는 샘이 있고, 나무에는 뿌리가 있듯이 ‘이 나라 할아버님은 단군’이라는 것이 제1절이고, 그 할아버님에 의해 우리의 하늘이 처음 열린 것이 ‘시월상달에 초사흘’이라는 것이 제2절이다. 이 오랜 전통을 잘 이어받아 ‘빛내오리다’는 맹세가 제3절이다. 개천절의 노래는 이 같은 구성이 아름답다. 한글날 노래도 ‘거룩한 세종대왕 한글 펴시니, 새 세상 밝혀주는 해가 돋았네’로 시작하는데, 그 경축의 의미가 노랫말에 잘 담겨져 있다. 국경일이 공휴일(제헌절은 2008년부터 제외)로 인식 되면서 그 경축의 의미는 퇴색되고 노래 또한 잊혀졌다. 말 그대로 연례행사에 한 번 부르고 접어두는 노래가 된 것이다. 국경일 노래를 깊게 해설하는 책이 한글날 즈음에는 한 권쯤 나오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