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시린 기운을 뚫고 피어오르는 이른 봄꽃들을 보고 싶지 않으셨나요? 화들짝 성큼 다가온 봄 마중을 위해 올 해 들어 처음 꽃 나들이를 나갔습니다. 꽃마중 가는 내내 봄기운처럼 푸근해지고 느슨해져서일까요? 스프링처럼 쏙쏙 솟아오르는 봄꽃들 속에서 어김없는 희망을 보았습니다. 곧 꽃으로 뒤덮일 경주의 산야에는 봄이 물오르고 있었습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곁에 찾아온 경주의 봄은 노랑색으로부터 시작된다고해도 과언이 아니죠. 경칩이 지난 경주의 들과 산을 수놓는 복수초, 산수유, 영춘화 등은 모두 노랑색이고 봄의 대표적 전령들이죠. 비교적 덜 알려진 경주 외곽의 산과 들 몇 곳을 다녀왔습니다. 안강읍 두류리 금곡사지 야산에서 만난 복수초며 변산바람꽃들의 군락, 건천읍 화천3리에서 만난 산수유와 분홍 노루귀의 물결, 율동 두대리 성주암자에선 독특한 동백들과 매화가 이미 개화를 시작하고 있었고 서악리 주택 담벼락에선 영춘화가 한창이었습니다. 이번호에서는 그들, 기지개를 켜고 있는 봄꽃들의 근황을 소개합니다.
경칩 지난 경주 야생의 들과 산에선
바람꽃, 복수초 등 봄의 전령들 ‘쏙쏙’
-안강읍 두류리... 금곡사지에서 무더기로 만나는 복수초와 변산바람꽃
안강읍에서 두류리까지 자동차로 약 30여 분을 달려갔습니다. 금곡사지 가는 길은 잘 알려지지 않은 긴 협곡과 저수지, 깊은 숲속을 한참 지나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윽고 산세 수려한 곳에 금곡사지 원광법사 부도탑 귀퉁이가 올려다 보였습니다. 이곳 금곡사지는 원광법사 부도탑으로 유명하다고 합니다. 신라시대 승탑으로, 1985년 경상북도문화재자료 제97호로 지정되었으며 부도는 부서진 채 일부만 남아 있던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이라 합니다.
이 탑은 3층 석탑 형식으로 1층 몸돌 및 3층 지붕돌만이 원래의 것이고 나머지는 현대 석재로 보완했는데 1층 몸돌을 살짝 파내어 부처님을 새긴 모습이 너무 선하고 부드러워 인상적이었습니다. 이 승탑의 주인공인 원광법사(542년~640년)는 화랑도의 실천덕목인 세속오계를 만든 분이지요. 불교사상뿐 아니라 문장에도 능했으며 대승불교를 깊이 연구하고 그것을 신라에서 강의한 최초의 학승이자 불교의 토착화에 크게 공헌한 분입니다. 진평왕 52년(630년) 황룡사에서 입적해 명활산에서 장사 지낸 후 삼기산 아래 이곳 금곡사에 모셨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전합니다. 이 곳 금곡사지 바로 옆 계곡 주변으로 복수초와 변산바람꽃이 무더기로 피어 있다고 해서 급히 발길을 옮겼습니다. 절의 맞은편으로 난 작은 오솔길을 따라 한참을 걷자,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꽃들이 우리를 반겼습니다.
유독 활엽수들이 많은 숲속이었는데 수북하게 쌓인 낙엽들 속에서 빼죽이 고개를 내밀고 있는 복수초며 변산바람꽃이 나지막히 자태를 자랑하고 있었습니다. 10㎝정도 될까요? 언땅 돌 틈에서 낙엽을 뚫고 올라와 우윳빛 꽃을 피운 변산바람꽃은 2월에서 3월 사이에 꽃망울을 터뜨리기 때문에 쉽게 보기 어렵다고 하는데도 무더기로 피어 있었거든요. 잔잔한 모양새로 여기저기 피어있는 여리디 여린 꽃무더기들은 서로의 몸을 보듬고 있는 형태였는데 동토에서 보드라운 속살을 내어 아직도 아침저녁 찬바람을 잘 견딘 듯 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복수초들은 깊은 야생의 숲에서 형광색에 가까우리만치 강렬하게 샛노란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아직 사람들의 발길에서 놓여나있고 소수의 야생화 매니아들만 알고 있다는 이곳을 소개하는 것은 자칫 조심스럽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곳을 산행하는 이들의 발길에 막 피어난 꽃들이 짓밟힐까봐 작은 돌들로 테두리를 만들어 준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이 손에 잡히는 듯 했습니다. 마음이 참 따뜻한 사람들이죠?-건천읍 화천3리 입암산 백석암 산수유 마을...직접 확인하고 그 기쁨 맛보시길 ktx 신경주역사를 지나서 단석산 백석암 자락 화천3리에 산수유 군락지가 있다는 소문은 익히 듣고 있었습니다. ‘백석암길’이라는 안내판을 따라 작은 마을길 속으로 한참을 올라가면 화천3리 마을회관을 만납니다. 지난 정월대보름 동제를 지낸 흔적이 역력한 마을 당산나무가 보이고 바로 맞은편에는 우리지역 중견작가인 송해용 서양화가의 작업실이 보입니다. 작은 개울가에 핀 산수유와 송 화백의 하얀색 작업공간의 외벽은 그림처럼 절묘하게 어울립니다.
그렇게 또 한참을 지나 이윽고 작은 저수지를 지나고, 백석암 가는 길과 합류되는 지점에서 오른쪽 오솔길을 조금 오르면 이내 산수유 군락지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이곳에서 백석암까지는 1시간 정도 걸어 올라가야 한다는군요. 입구부터 산수유와 함께 핀 매화가 진하게 향을 내뿜고 있었습니다. 경칩을 지나서였을까요? 군락지 입구의 계곡물은 그리 차지 않고 청량감을 더했습니다. 이 마을 담장 너머, 들판 여기저기에는 유독 산수유들이 넘쳐났습니다. 군락지 입구부터 핀 매화와 산수유들엔 벌들의 비행이 요란했고 지난해 가을 떨어진 묵은 산수유 열매들이 아직 퇴색되지도 않은채 지천으로 떨어져 있었습니다. 결실을 상징하는 붉은 산수유열매와 새봄에 핀 노란꽃들이 서로 교차하며 봄을 맞이하고 있었던거죠. 절묘한 대비란 이런 것일까요? 또, 숲속의 응달에서 잎보다 먼저 흰색 또는 분홍색으로 핀다는 노루귀도 눈을 호강시켜 주었습니다.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는 직접 확인하고 그 기쁨을 맛보시길.-율동 두대리... 경주 율동 마애 여래삼존입상 있는 성주암에는 짓붉은 겹동백과 분홍 동백이 ‘눈길’ 율동 두대리는 태종무열왕릉에서 소티고개를 넘어 건천 방면으로 5분여 가다보면 만나는 유서깊은 마을입니다. 마을 주위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벽도산은 작지만 아늑하게 느껴집니다. 간이역이었던 율동역의 무인철도건널목을 지나고 마을회관 쪽으로 깊숙히 들어가면 오래돼 보이지만 정갈한 작은 암자가 나타납니다. 암자 입구서부터 은은한 매화향이 전해졌습니다. 자주 찾아가는 암자지만 이 암자를 찾을때마다 설렙니다. 그것은 사계절 내내 각기 다른 풍경을 감상하는 즐거움 때문일 것입니다.
이 암자는 일명 ‘성주암’이라고 불린다고 합니다. 암자 주위의 꽃길은 어느 한 스님의 발자취라고 하는데요, 마을 주민의 말에 의하면 오래전 지어졌던 이 암자에 1980년대 말에 스님 한 분이 오셨고 스님은 무척 꽃을 좋아해서 희귀한 동백 여러 종과 매화, 목련, 수국, 명자나무, 옥잠화, 녹차나무 등을 심고 지극정성으로 가꿔 사계절 꽃으로 둘러싸인 지금의 성주암을 즐길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야흐로 목련은 꽃봉우리가 부풀어있었고 매화향이 진동하는 가운데 흔히 볼 수 없는 분홍과 진붉은 겹동백이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암자 뒷편 너른 바위에는 ‘경주 율동 마애 여래삼존입상’ 석불이 자비로운 미소를 머금고 서 있습니다. 8세기 후반의 마애불인 이 입상석불은 보물 제122호로 각 상의 높이는 본존불 3.32m, 좌협시보살상 2.45m, 우협시보살상 2.22m이라고 합니다. 볼수록 정감이 가는 마애삼존석불 입상이지요. 암자를 내려오는 길에서 만난 마을 당산나무에는 새끼줄이 둘러져 있었는데요, 370여년 수령을 자랑하는 노거수로서 회화나무라고 합니다. 얼마전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무사안일을 기원하며 정월대보름 동제를 지냈다고 하는군요. 마을 한 모퉁이 제법 넒은 텃밭에는 냉이며 마늘이 고랑을 따라 나란히 심어져있었는데 특히 냉이꽃이 뽀얀 꽃을 피워올려 야생의 봄 향기를 내뿜고 있었습니다.-서악리 이른 봄 가장 먼저 피는 영춘화... 담벼락에서 무리지어 흐드러지게 피어 영춘화(迎春花)는 이른 봄 잎보다 먼저 피고 노란색이며 각 마디에 마주달리는 꽃입니다. 매화나 산수유, 수선화 보다 앞서 어느샌가 노란 빛을 보여주며 이름 그대로 봄을 맞이하는 꽃입니다. 얼핏 개나리와 흡사해 구별짓기 어렵다는 이도 많지요. 경주시내에서 서악리 주택가 두 세 집은 영춘화로 무척 유명합니다. 집 담벼락에서 무리지어 흐드러지게 활짝 핀 영춘화가 경주시내에 봄이 왔음을 알려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마을을 찾는 많은 이들의 카메라에 포착되고있는 이 영춘화 무리는 만개해 아쉽게도 조금씩 지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