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맑은 푸른 가을날이었다. 그날도 다름없이 고무신 선생이 교실에 들어와서 수업을 하다가 갑자기 하늘을 쳐다보며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고무신 선생은 학생들에게 잠깐 동안 자습을 하라고 했다. 그러고는 화장실에 다녀오겠노라 하면서 교탁 위에는 분필, 출석부까지 고스란히 놓아두고 나가신 고무신 선생은 마침종이 쳐도 돌아오지 않았다. 그 시간에만 안돌아 온 것이 아니라 다음 시간 역시 자습이었다.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도 고무신 선생은 학교에 나타나지 않았다. 삼사일이 지난 어느 날 아침, 학교 운동장에서 전체조회를 하기 시작했다. 운동장엔 학생들이 늘어서고, 앞에는 담임교사가 서고 학교장이 조회대에 올라가서 훈화를 하고 있을 무렵, 그때 갑자기 헬리콥터 한 대가 나타나 아침 조회를 하고 있는 학교 운동장 상공에 날기 시작했다. 두서너 바퀴를 돌던 헬리콥터 안에서 비로소 고무신 선생이 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안에서 그는 손을 흔들어 빙그레 웃으면서 자기의 소재를 알렸다. 몇 바퀴를 선회하던 헬리콥터는 운동장 구석에 앉기 시작했다. 거기서 내린 고무신 선생은 완전 군인복장으로 갈아입고 계급장까지 달려 있는 모자를 눌러 쓴 그는 자기가 입었던 민간복을 돌돌 말아서 허리끈으로 동여 묶어서 빙빙 돌리며 비행기에서 내려 곧장 운동장 조회를 하고 있는 학생들 앞에 섰다. 학생들과 교직원들은 반신반의(半信半疑), 놀란 듯 우스운 듯 감탄을 감추지 못하고 낄낄거리기 시작했다. 고무신은 그 나름대로 충분한 이유가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고무신 선생은 전부터 친하게 지내오던 해병 장교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가을 하늘을 쳐다보고 수업을 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비행기를 타고 싶었던 것이다. 그래서 평소 알고 지내던 포항 해병사령부의 친구를 찾아가서 비행기를 한번 태워주기를 애원했기 때문에 그와 함께 군복으로 갈아입고 비행기를 함께 탔던 것이다. 그 만큼 그는 여유 있고 자유분방한 시인이요, 남의 눈치를 살피며 사는 사람이 아니었다. 뭐든지 하고 싶으면 곧 바로 실행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정민호(시인. 동리목월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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