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경주 사람 아니었으면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지난달 15일 경주고도보존회 행사장. 만화가 이현세 화백(세종대 교수)이 특별한 축사를 하고 있었다. 이날 고도보존회가 행사 전에 배포한 자료에는 행사 자료집 이외에 이현세 화백이 신동아와 인터뷰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월간 신동아가 이현세 화백의 출세작 ‘공포의 외인구단’이 발표된 지 올해로 40년을 기념하는 인터뷰를 실었는데 그 인터뷰 전문을 복사해 온 것. 이날 축사는 이정락 회장이 이현세 화백의 까치 탄생 4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특별히 마련한 순서였던 것이다. 그것을 잘 알아서였을까? 이현세 화백이 이정락 회장과의 인연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작년 10월부터 화실 전체를 쉬고 있었습니다. 제가 쉬려면 일을 안해야 하는데 그러면 화실 식구들 월급을 줄 수가 없어요, 이게 부담이 돼 아예 문 닫고 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 이정락 회장에게 뜻밖에 야단을 맞았단다. “제가 쉰다고 말씀드렸더니 ‘이걸 너 혼자 만든 것이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가슴 조이고 네가 커나가는 것을 도왔는데···, 내가 볼 때 너는 쉬려고 하는 게 아니라 늙고 병들고 지쳐서 그만두려고 하는 것이다’고 다그치시더군요. 제가 아차 놀라서 생각해보니 그렇게 생각하실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그래서 이현세 화백은 향후 일년만 쉬고 다시 작업을 시작하겠다고 약속드린 후 스스로도 그렇게 다시 다짐했다고 고백했다. 이현세 화백은 또 자신이 역사만화를 가장 많이 그린 작가라 밝히며 그 배경이 경주가 고향이었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았다. “때로는 경주를 욕할 때도 있었고 빛낼 때도 있었지만 여하튼 경주를 제 작품에 가장 많이 올렸습니다. 이것은 그야말로 경주가 저에게 준 선물이었습니다” 그런 다음 이현세 화백은 그 자신 가장 큰 트라우마로 삼고 있는 법정시비 문제를 꺼냈다. “제가 25년 전 천국의 신화를 펴냈을 때 뜻밖에 음란물 폭력물 유포혐의로 기소됐습니다. 이때 이정락 회장님이 ‘네가 예술가 맞냐?’고 물으셔서 ‘그 고집으로 여기까지 왔습니다’고 대답했습니다” 이정락 회장은 이 대답을 듣고 ‘그렇다면 담당하게 임해라’고 한 마디 한 후 1심에서 대법원 상고심까지 무려 6년간 변호를 맡아 마침내 무죄 판결을 이끌어냈다고 한다. “그래서 제가 변호사비 어떻게 드려야 되느냐고 상의 드렸더니 ‘내 니안테는 안 받는다’고 사양하셨습니다. 그러니 회장님께 빚진 게 얼마나 크겠습니까?” 이현세 화백은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회장님이 나오라면 꼼짝 없이 나오는 수밖에 없다”고 말해 주위의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진 이현세 화백의 일화에 좌중은 또 한 번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현세 화백은 함께 자리한 세종대 역사학과 최정필 교수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세종대학교 교수될 때 최정필 교수님 힘을 입어서 이사장 면담조차 하지 않고 쉽게 통과했습니다. 이게 다 제가 경주 사람인 덕분이었습니다” 보통은 어느 자리에서건 짧게 인사를 끝내는 이현세 화백이지만 이날 축사는 축사라기보다는 근황을 소개하는 고백처럼 들렸다. 보통의 축사는 1분만 넘어가도 지겨울 정도인데 이현세 화백의 축사 아닌 축사는 5분을 넘겨도 좌중의 관심을 끌었다. 마치 한 편의 인터뷰를 보듯 참가한 인사들은 이현세 화백의 축사에 귀를 기울였고 인사가 끝나자 우레 같은 박수를 보냈다. 인사 후 자리에 돌아왔을 때 기자 역시 이현세 화백에게 ‘까치 탄생 40주년 특별 인터뷰’를 제안했다. 이현세 화백이 흔쾌히 동의했다. 조만간 본지를 통해 형식적이지 않은, 세상에서 가장 입체적이고 재미있는 ‘이현세 화백 공포의 외인구단 탄생 이후 40주년 풀 스토리’를 읽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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