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릎 꿇고 두 손 모아천수관음 앞에 비나이다.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졌으니손 하나 놓고 눈 하나 덜어내어두 눈 다 없는 저에게하나만이라도 고쳐 주시옵소서.아아. 저의 눈 밝혀주시면베푼 자비심으로 큰 부처되오리다.이를 기려 노래한다.*죽마(竹馬)타고 *파피리 불며 마당에서 놀던 아이하루아침에 두 눈이 멀었네.관음보살님이 자비 베풀어 두 눈 뜨게 하지 않았다면*춘사(春社) 헛되이 버들꽃을 못보고 지냈으리. 【삼국유사】『분황사 천수대비 맹아득안(千手大悲 盲兒得眼)』탑상편(塔像篇) 기록을 보면 신라 35대 경덕왕때 한기리(漢岐里)에 사는 여인 희명(希明)의 아이가 다섯 살이 되던 해 갑자기 눈이 멀어 애간장을 태우다 아이를 안고 분황사로 달려가 왼편 금당 북쪽 벽에 솔거가 그린 천수천안관세음보살(千手天眼觀世音菩薩) 화상(畵像) 앞에서 노래를 시켜 빌게 했더니 마침내 아이가 눈을 뜨게 되었다. 솔거가 그린 천수관음화상은 【삼국사기】열전(列傳) ‘경주 분황사의 관음보살은 솔거의 필적으로 세상에 전하는데 이를 신화(神畵)라 한다.’라는 기록이 있다. 솔거가 그린 천수대비관음 화상은 눈먼 아이의 눈을 뜨게 할 만큼 영험 서린 그림이었던 것이다. 신라여인(新羅女人) 희명의 설화속에 느껴지는 부르기만 해도 눈시울 젖어드는 그립고 그리운 이름 어머니!. 애지중지 살갑고 귀한 어린자식 갑자기 눈이 먼 상실감에 천지가 무너지고 애간장이 녹아 든 어미의 심정 어찌 말로 다하랴! 하늘이 내려앉고 땅이 꺼지는 절망감과 위급한 상황에 몸서리치며 분황사 금당 천수대비 전에 무릎 꿇고 통곡하며 매달렸을 가난하고 고귀한 모성(母性). 그 간절한 음성 천지신명께 닿아 눈 밝혀진 아이. 이 세상 다함없이 오직 자식을 위해 희생도 달가워하는 우리네 어머니의 살과 뼈가 녹아내린 눈물의 기도 없이 어떻게 우리가 생의 한가운데를 걸어갈까! 신은 멀리 있기에 인간 가까이 두신 어머니, 그 위안과 위로의 시간을 짚어 은혜로 돌아보는 세월이 겸허하다. 가없는 어머니의 사랑으로 존재를 확인받고 그 사랑 티끌만큼도 다 하지 못했건만, 우리의 딸들이 신라적 희명의 눈 뜬 아이 행복으로 자녀들 재롱을 보며 살아가는 아름다운 모정의 나날에 감사함의 고개를 숙인다. 선덕여왕도 요석공주 희명여인도 우리네 어머니도 닮은 심정으로 빌고 빌었을 여인의 기도소리 품고 가는 분황사, 경덕왕 을미년(755) 본피부(本彼部) 강고내말(强古乃末) 장인이 주조한 무게가 306,700근인 약사여래상(藥師如來像)도 한 몫 무량하게 심신의 아픔 송두리째 거둬갔을 것이다. 천년을 오르내리며 흩어지는 연꽃 향기를 여인이 먼저 맡고 가는 당간지주 소담스런 가람터, 돌우물 흥건한 샘물 한사발 정안수 떠 놓고 희명여인 기도소리 귀담아 원효의 무애가(無碍歌) 한소절 무심(無心)으로 베끼다 보면 어느새 수월해지는 삶, 모전석탑 층층이 박힌 햇살이 공들인 무늬로 촘촘하다.*대나무로 만든 말*파를 꺾어 만든 피리*입춘후 다섯 번째 무일(戊日)로 봄제사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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