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어디에서 도마뱀은 꼬리에 덧칠할 물감을 사는 것일까어디에서 소금은 그 투명한 모습을 얻는 것일까어디에서 석탄은 잠들었다가 검은 얼굴로 깨어나는가젖먹이 꿀벌은 언제 꿀의 향기를 맨 처음 맡을까소나무는 언제 자신의 향을 퍼뜨리기로 결심했을까오렌지는 언제 태양과 같은 믿음을 배웠을까연기는 언제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을까뿌리는 언제 서로 이야기를 나눌까별은 어떻게 물을 구할까전갈은 어떻게 독을 품게 되었고거북이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그늘이 사라지는 곳은 어디일까빗방울이 부르는 노래는 무슨 곡일까새는 어디에서 마지막 눈을 감을까나뭇잎은 왜 푸른색일까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의 먼지만도 못하고짐작하는 것만 산더미 같다.그토록 열심히 배우건만우리는 단지 질문하다가 사라질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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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는 온통 질문의 책 호기심과 궁금증이 없다면 어떻게 인생을 살아갈까. 이 시는 만물에 깃든 존재의 근원과 현상을 어린이다운 시각으로 질문하고 있다. 물론 그 질문의 끝은 “우리는 단지 질문하다가 사라질 뿐”이라는 인간의 왜소함과 한계에 대한 자각이다. 그러나 나는 끝연의 이런 교훈성이 왠지 싫다. 질문 자체만으로 우리 삶은 싱그럽고 행복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오렌지’가 ‘태양’의 사촌뻘이라는 생각은 아하, 탄성을 내지르게 한다. “연기들이 공중을 나는 법을 배웠”다는 말, “뿌리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는 생각, 나아가 “빗방울이 부르는 노래는 무슨 곡일까”에 이르면 어이쿠, 하면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다. 그 사고는 물론 “젖먹이 꿀벌들은 언제 꽃의 향기를 맨 처음 맡을까”에서처럼 과학적이지는 못하다. 그렇다고 우리는 곤충과 포유류를 구분도 못하나, 핀잔은 하지 못한다. 동심은 자신처럼 세상을 본다. 젖먹이 아기에서 유추된 발상은 젖먹이 꿀벌, 나아가 어른 꿀벌들의 노고로 나아갔을 것이다. 농촌에서 자란 내가 맨 처음 품은 질문은 집 담벼락의 장미꽃을 보고서였다. 흙속에는 무슨 염료가 들어 있길래 어느날 불쑥 빨간 꽃이 솟아나오는가? 내 손에 뽑힌 흙덩이를 묻힌 잔뿌리를 보며 그 궁금증은 한동안 가시지 않았다. 똥통을 그렇게 미끌어지고 오르던 구더기는 언제 항공술을 익혀 균형을 잡고 파리로 날아가는 걸까? 많이 사그라들었지만 지금도 자연과 인간에 대한 궁금증은 피어오른다. 그 분분하던 복사꽃은 어디로 이사갔는가? 설렘으로 지상을 내려오던 눈은 왜 마음을 바꿔 감쪽같이 사라지는가? 오늘의 심장은 그녀 손을 잡던 날 쿵쾅거리며 잠들지 못하던 그 심장인가? 이 시는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이라는 다섯 개의 원칙이 왜라는 질문으로 수렴되면서 호기심어린 질문이 육하원칙(六何原則)으로 완성되는 지점을 보여준다. “우리가 아는 것은 한 줌의 먼지만도 못하고/짐작하는 것만 산더미 같다”고 시인은 비판했지만 나는 그런 ‘물음’으로 그런 ‘짐작’으로 매일의 생을 살아가고 싶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 시가 한국에 들어와서 만들어진 제목 「우리는 질문하다가 사라진다」보다 원제목 「다문 입으로 파리가 들어온다」가 더 좋다. 다문 입으로 파리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골똘히 질문하는 그런 많은 주변인들을 보고 싶은 바람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