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년여 전 불교 8대 성지 순례에 이어 며칠 전 또 열하루 동안 인도를 다녀왔다. 산치대탑, 아잔타·엘로라 석굴 등 성지순례에 이어 라자스탄 지방 중심의 문화 탐방이었다. 가축이 도로를 유유히 다니고 오토바이, 오토릭샤, 화물차 등이 내뿜는 가스, 클렉션의 소음 속에 태연히 노숙을 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수행승이었다. 그들에게서 부처님 모습이 오버랩된다. 이 사실을 전하고자 다시 불국사 대웅전을 찾았다.『불국사고금창기』 기록에 의하면 대웅전에 봉안된 5구의 조상(彫像)은 주존인 석가를 중심으로 좌우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이 협시를 하고, 그 바깥쪽으로 가섭과 아난 두 제자의 상이 있다. 불보살이 복장기(腹藏記)에 의하면 이 상들은 개요(槪要) 원년(元年) 신사(辛巳) 즉 681년 4월 8일 낙성되었다고 한다. 보물 제1744호로 지정된 대웅전은 임진왜란 후 효종 10년에 재건되었다가 다시 100년 후인 영조41년(1765년)에 천룡사의 스님인 채원(采遠)이 중창하였다. 현재 건물 하부의 초석과 가구식 기단 등은 신라 시대 조성 당시의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에 불국사 대웅전과 가구식 기단을 2011년 국가지정문화재인 보물 제1744호로 지정했다. 대웅전의 평면구성은 정면 5칸, 측면 5칸으로 현존하는 18세기 불전으로는 유일한 평면배치로 내부 공간 구성의 특성 등을 잘 간직하고 있다. 이 대웅전은 한 조각의 철물도 쓰지 않고 완전하게 조립식으로 얽어 만든 목조 건물이다. 토축으로 단을 쌓아 그 위에 건물을 세웠으며 4면에 돌계단이 있고 좌우는 회랑으로 통한다. 안에는 정면으로 수미단(須彌壇)이 있고 그 위에 목조삼존불이 안치되어 있다. 석가여래를 가운데 모시고 그 좌우에는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협시하고 있다. 미륵보살은 석가모니불의 교화를 받아,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은 뒤 도솔천에 올라가 천인들을 교화하고 있다가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뒤 56억7천만년이 지나 다시 이 사바세계에 출현하여 성불한 후 3번의 설법으로 모든 중생을 제도할 미래불이다. 제화갈라보살은 아득한 과거 석가모니부처님이 수행자이던 시절에 장래에 부처님이 될 것이라고 수기를 준, 과거불인 정광여래의 화신이다. 삼존불의 좌우에는 흙으로 빚은 가섭(迦葉)과 아난(阿難) 두 제자의 입상(立像)이 있고 동쪽으로는 옥돌로 제작한 16나한상이 있다. 석가여래의 수인은 대체로 항마촉지인이나 그 기능과 역할에 따라 설법인·선정인·전륜법인·시무외 여원인을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불국사 대웅전의 석가여래는 특이하게 중품하생인을 하고 있다. 이는 아미타여래의 수인이다. 현 극락전의 아미타여래 역시 중품하생인의 수인을 하고 있다. 대웅전의 본존불은 극락전의 아미타여래 수인과는 반대로 오른손을 위로, 왼손을 아래로 하고 있다. 하지만 수인만으로 대웅전의 불상을 아미타여래로 볼 수는 없다. 부석사 무량수전의 아미타여래상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다. 대웅전의 ‘영산회상도 및 사천왕 벽화’가 2013년 보물 제1797호 지정되었다. 이 불화는 1769년 영조의 딸인 화완 옹주와 상궁 김씨 등이 시주해 조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2010년 대웅전 후불벽에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2구의 관음보살벽화를 발견하였다. 이들 벽화는 후대에 덧칠된 호분(胡粉)에 가려 그 존재가 드러나지 않았는데, 국립문화재연구소의 과학적 조사·분석(적외선 촬영)을 통해 보다 분명하게 도상을 판독하게 됐다. 확인된 도상에 따르면, 오른쪽에는 백의관음보살도(白衣觀音菩薩圖)이며, 왼쪽에는 어람관음보살도(魚籃觀音菩薩圖)가 자리했다. 백의관음은 아이의 출산과 생명을 보살피며, 흰 옷을 입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어람관음은 나찰, 독룡, 아귀의 해를 제거해 주는 관음이다. 이 벽화는 대웅전이 중창된 2년 뒤인 1767년 4-6월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