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봄 소풍이었다. 소풍 장소는 선도산(仙桃山)이었는데, 학생들은 고무신 선생이 술을 좋아하기 때문에 우선 술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는 주로 막걸리가 주류를 이루었으니 학생들은 미리 양조장에 가서 술을 준비하여 당일 아침 학급 반장들이 모여 막걸리 말을 한데 묶어 나무 작대기에 꿰어 어깨에 메고 선도산까지 운반했다.
고무신 선생은 아침부터 계속 막걸리를 마시기 시작하여 점심도 안 먹고 오후 쯤 되니 완전히 취하게 되었다. 술이 취하면 번득이는 기행과 주벽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고무신 선생은 학급 반장을 집합시켰다. 좋은 일 궂은일 할 것 없이 무슨 일만 있으면 학급 반장을 집합시키는 것이 보통이었다.
각 학급 반장들이 어김없이 집합했다. 고무신 선생은 그 앞에서 일장 훈시를 시작하는 것이다. “아-.학급 반장 여러분, 내가 제군들을 집합시킨 것은....” 하고 서두를 시작했다.
다른 동료 직원들은 취한 고무신 선생을 진정시키려고 끌고 다른 곳으로 가려했으나 허사였다. “야, 이놈들아, 경주시내에 막걸리 밖에 없더냐? 응, 맥주나 위스키는 모두 씨가 말라죽었다 하더냐. 응, 이놈들아” 하고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학급 반장들은 모두 잘못했다는 눈치로 사죄하는 시늉을 한다. 그 때다.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사태였다. 훈시를 하던 고무신 선생이 갑자기 막대기를 휘둘러 앞에 서서 훈시를 듣고 있던 학생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학생의 머리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 내렸다. 학생이고 선생이고 모두 어수선한 분위기에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 우선 학생들은 피가 흐르는 그 학생을 운반하여 병원에 가는 등, 사뭇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소풍 행사는 끝이 났다.
그러나 며칠 후에 학생들은 고무신을 쫓아내자는 데모를 모의하고 있었다. 학생들 사이에는 이런 일이 있은 다음 날부터 수군수군하기 시작했고 나중에 고무신 선생의 사건은 불문에 붙이기로 하여 그 후 차츰 잊어가고 있었다. -정민호(시인. 동리목월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