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쪽 대형주차장과 연접해 조성된 상가 밀집지역이다. 세 차례 이 거리와 골목길을 걸으며 볼수록, 올수록 빠져드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침체의 늪에서 빠져나와 꿈틀거리며 요동을 치고 있는 느낌이랄까. 이 길은 동서로 이어지는 메인도로 4길, 남북으로 8개의 길이 바둑판처럼 뚫려있어 유스호스텔, 유스텔, 기념품 상점, 식당, 카페 등 다양한 상가군들이 복합적으로 조성되어 있다. 최근 두산위브아파트가 입주하면서 1만명을 넘어선 마을을 끼고 있기도 하다.
봄이면 겹벚꽃으로 인산인해를 이루는 불국사 인근 이 거리에 2년여 전부터 작고 예쁜 카페들과 밥집, 체험형 공방, 서점, 갤러리형 카페 등이 하나씩 생기면서 경주 불국사를 찾는 이들에게 조금씩 회자되면서 알려지고 있다. 이곳은 불국사와 석굴암, 동리목월문학관에 연접해있고 감은사지와 문무대왕릉이 있는 감포동해바다까지 15~20여분이면 갈 수 있다. 상가 점포만해도 100여개 곳이며 호텔급인 유스호스텔과 유스텔(구 여관) 40여 곳이 현재 그대로 남아있다. 이 거리와 골목에서는 단연 높은 층고의 한옥들이 즐비하게 들어서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은 부귀와 영화로 점철됐던 불국사 상가들이고 주택들이었다. 반듯한 길과 골목에서 만나는 거대한 한옥건축물은 비록 쇠락한듯했으나 마치 철옹성 같은 한옥에서 풍기는 위엄과 압도적인 건축미는 단연코 전국 최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 건축물들과 오래된 측백나무들과의 조화도 이채로웠다. 높다란 기와들이 웅장하게 줄지어 이어져있는 처마들의 다양한 선들은 가히 일품이다. 대형 숙박업소 건축물들이 비어있는 현실은 안타까웠으나 한옥의 건축물들은 그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자산인 듯 했다. 건령은 오래됐으나 당시의 건축 양식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그 자체가 값진 디자인이고 당시 번성했던 한때를 유추할 수 있는 유물과도 같았다.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1970년대 한옥의 건축미를 지닌 한옥 군집지인 셈이다. 그 가운데 최근 속속 새롭게 문을 열어 촛불처럼 켜져 있는 작은 상점들에서는 미약하나마 희망의 불씨를 볼 수 있었다. 주민들은 메르스와 세월호 참사에 이은 지진의 악재 여파를 힘겹게 이겨내는 중이다. 불국사숙박단지 내 경주황룡유스호스텔 등은 관광비수기인 겨울철 적극적인 노력으로 태권도, 축구, 야구 등 다양한 종목의 선수들이 화랑의 정기가 서린 불국사와 토함산을 배경으로 훈련장에서 비지땀을 흘리고 이곳에서 숙박하며 쉬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유스호스텔업계는 리모델링 등으로 업종변경을 시도하는 등 기존상가들도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불국신택지길 경사가 진 대로변에는 사계절 내내 운치있는 가로수가 방문객들의 탄성을 자아낸다고 한다. 개성만점의 가게들이 가지는 자생력이 결합되면 그것이 유인력을 지닌다고 강조하는 이동우 서울예술의전당 국립예술단체연합회 사무국장과 이 거리를 동행했다. -“불국사는 수학여행 일번지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는 동네, 70~80년대 사람들을 유인했던 가장 강력한 ‘수학여행’이라는 문화상품 지녔던 곳” 최근 이 길은 황리단길의 영향으로 ‘불리단길’이라 불리기 시작했으나 이 이름에는 이견들도 상당하다. 불리단길이라는 이름을 지양하고 ‘소소소 길(소소하게 다니면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 소품등을 구경하는 거리)’로 명명하자는 움직임도 있다는 것. 이동우 사무국장은 이 거리와 골목에 대해 카페 등 근린생활장치외에도 이곳의 역사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컨텐츠를 장착해야 하는데 개성있는 상점 자체가 사람들을 끌어오는 요인도 되겠지만 이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을 하며 불국사를 찾는 방문객이나 단체 여행단이 이 거리를 찾을 수 있는 컨텐츠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곳은 수학여행 일번지라는 함의를 지니고 있는 동네이지 않습니까. 불국사는 70~80년대 사람들을 유인했던 가장 강력한 ‘수학여행’이라는 문화상품을 지녔던 곳이죠. 전국에서 당시 수학여행을 온 이들이 학창시절 추억을 지닌 장소인 것이죠. 추억을 팔 수 있는 장소라는 말인데 이를 불국사의 파워와 연계할 수 있다고 봅니다. ‘수학여행마을’이라는 컨텐츠와 함께 새로난 길을 통해 동해안(감포)까지 쉽게 갈수 있는 동네이기도 합니다. 즉, 다목적 여행이 실현 가능한 중간 기착지 역할을 할 수 있는 전략적 장소인 셈입니다. 쇠락해가고 있지만 이미 구획화 돼있는 상권이므로 ‘재생’이라는 차원에서 접근한다면 꿩도 먹고 알도 먹을 수 있는 조건이라고 봅니다”라며 수학여행지로서 입지를 공고히 했던 점을 부각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현재 비어있는 공공적 건물에 전국적으로 추억담을 공모하는 형태로 컨텐츠를 모으는 과정 자체가 이곳을 붐업 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하며 카페 등의 작은 상가들은 자동적으로 이 지역을 소비하는 후광 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평일엔 경주시민들이 자주 찾아” “카페 위주의 상가만 들어서고 있어 우려” 이 거리에서 제일 먼저 들른 곳은 2017년 개업했다는 ‘유니정원(엄윤희 대표·인물사진)’이었다. 이 거리에선 카페 1호점이었다고. 꽃을 판매하면서 카페 기능을 하는 플라워 카페였는데 작은 한 채의 한옥을 그대로 리노베이션한 곳이다.
엄 씨는 “2년전만해도 거의 불모지인 이곳에 정착하게 된 것은 주변이 조용하고 대로를 끼고 있는데다 한옥이었고 불국사라는 장점이 있어서였습니다. 개업 이후 1년여가 지나면서 이곳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이 늘었고 덩치가 큰 건물이외 작은 독채 상가들은 매매가 이뤄지기 시작했습니다”라며 평일엔 경주시민들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 “아쉬운 것은 손님들이 불국사는 오시는데 골목안에는 아직 볼거리 부족으로 유입이 잘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또 저희 카페가 들어선 이후로 카페 위주의 상가만 들어서고 있어 우려되기도 하구요” 고양이 카페 두 곳 등을 비롯해 10여 곳의 카페들이 생겼다며 다양한 업종이 입점하길 바랐다.-“마음이 따뜻해지는 감성 작업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합니다” 연이어 2018년 3월 입점했다는 복합문화공간 ‘꽃신(손유정 대표)’에 들렀다. 이 공간은 북카페이자 꽃그림을 비롯한 생활그림공방, 자수, 뜨개질 등을 쉽게 체험하고 빈티지 소품 등을 갖춘 곳이었다. 대량으로 똑같이 찍어내는 상품이 아닌 주인장의 손길이 직접 닿아 재탄생되는 물건들을 다루고 있었다.
우연하게 이 동네의 아름다움에 홀딱 반해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됐다는 손 씨는 “이 주변에 소소하고 사랑스런 가게들이 많이 생겨 잔잔한 문화를 공유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마음이 따뜻해지는 감성 작업실이 더욱 많아졌으면 합니다”라고 했다.
서로 즐거움을 주고 받는 곳. 쉽고 편하게 체험을 할 수 있어 문턱이 낮은 이 공간에는 늘 수강생이나 손님들로 가득하다. 책 보고 차 마시고 작은 꽃그림도 그리고 배우고 놀다 가는 공간. 주민들과 공생하는 친숙한 공간을 자처하며 주문도 하기 전에 선뜻 차와 다과를 내놓는다. 꽃신은 저녁 늦도록 이 거리를 불 밝히는 고맙고 사랑스런 공간이다. 꽃신을 돌아서는 바로 옆 골목길에는 작지만 잘 지은 한옥들이 나란히 정렬해 있었다. 이 길 끝 자락 즈음에 브런치카페&가죽공방 ‘아고’를 만났다. 옆으로는 버스가 교행하는 큰 대로가 나왔고 맞은편에는 단연 눈에 띄는 ‘불국사 유스호스텔’이 그 거대한 한옥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운영이 되고 있지 않은 상태였다. 맞은편으로는 ‘다시, 봄’이라는 커피 & 브레드 카페도 보였다.-‘그냥 작고 소박한 밥집’, ‘빨강머리 앤 공방’, ‘신촌서당’, ‘별하상점’, ‘풀꽃 갤러리 카페(가칭)’ 유니 정원을 마주보는 위쪽 상가들에는 ‘그냥 작고 소박한 밥집(김동하 대표)’, 작은 카페, 다슬기 식당, ‘빨강머리 앤 공방’ 등이 연이어 형성돼 있었다. 지난해 5월 입점했다는 ‘그냥 작고 소박한 밥집’은 손님 맞춤형 밥집이다.
배고픈 학생들이 찾아오면 김밥은 더욱 푸짐해지고 두툼해진다. 김밥과 돈가스가 대표 메뉴인 이 집은 한번 먹으면 꼭 다시 찾는 밥집이다. 김동하씨는 가을까지는 불국사를 찾는 이들이 넘치지만 이 골목길에 이런 가게들이 있다는 것은 잘 모르고 있다며 상점 간 간격도 넓고 공터(유휴 공간)가 넓은 곳이 많아 꽃을 무리지어 조성한다든가 하는 특정적인 랜드마크적인 시설이나 눈길을 확 사로잡는 조형 공간이 조성되길 바랐다. 이 거리 안쪽 상점들을 알릴 수 있는 작은 약도나 안내판이 시급해보였다. 상인들간 이해와 관계 당국의 배려와 관심도 절실했다.
이 밥집 바로 근처에 고전 읽는 가게 ‘신촌서당’이 입점해 있었다. 이곳에선 고전 읽기, 포크송 만들기, 기타 레슨, 어린이 책읽기 등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그 위로 런치 카페겸 예쁜 소품과 건강한 디저트를 제공하는 ‘별하상점’이 있다.
유스호스텔 사이사이로 보이는 한옥들은 펜션으로 활용되거나 주택으로 기능하고 있었다. 간혹 리모델링 중이거나 신축하는 현장도 만날 수 있었다. 4월 초 선보일 예정으로 ‘풀꽃 갤러리 카페(가칭)’로 신축 중인 정애경씨는 그림을 그리기도 하는데 그림과 공예를 선보이는 갤러리 겸 카페를 차리려 한다고 귀뜸했다. “외국인 친구들이 경주를 찾을 때 일순위로 불국사를 찾더라구요. 울산에서 살다가 이곳이 너무 아름다워 이 동네 부지를 사서 신축중입니다. 마당에 풀꽃들을 많이 심고 오래도록 이쁘게 살고 싶어요(웃음)” 다른 사람들과 이 공간을 공유하고 같이 즐기고 싶다며 희망에 부풀어있는 주인의 마음에는 이미 봄이 와 있었다.-“지금의 건물들은 1980~90년대 지어진 건물도 있지만 대부분의 주택들은 1970년대 지어져” 별하상점 바로 옆에는 오랜 시간의 흔적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상가이용원’이라는 간판이 눈길을 끌었다. 45년 이발 경력을 자랑하는 이곳은 불국사 상가번영회회장 유현수 대표가 주인장이었다. 이 동네 주민들이 이용하는 유일한 이발소였다는 이곳은 1973년 건물로 80년대가 가장 번성했던 전성기였다고 한다. 이용원 바로 옆에도 리모델링 중이었는데 공방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했다. 유현수 대표는 “평소 경주에 애착이 많았던 박정희 대통령의 지휘하에 상가 및 숙박시설단지가 조성됐습니다. 근린 5종 지역으로 골기와 이외에는 허가가 나지 않았고 당시 건축비용이 많이 들어간 건물들입니다. 지금의 건물들은 거의 당시 건물이며 물론, 80~90년대 지어진 건물도 있지만 대부분의 주택들은 당시 지어진 것들입니다. 낙후돼있는 건물들에 대해 지난해부터 타일을 교체하고 도색을 하는 등의 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만 미약합니다”라고 했다. 유 대표는 1000여 명 정도를 치를 수 있는 단체 대형 숙박업소들의 고전은 쉽게 해결되지 않을 것이라며 당시 초,중,고등학생 단체를 수용하는 틀에 맞춰진 규모이기 때문에 건물들이 크다고 했다. 상대적으로 작은 상가나 주택들은 현재 팔리고 입점하고 있는 추세라고 했다.
-“벚꽃과 아름드리 은행나무 조성돼 있어 골목골목의 테마가 다르게 만들어질 수 있어” ‘행복한 춘심이’ 캐릭터로 유명한 이철진 중견화가도 지난해 이 동네 주민이 됐다. 경주를 워낙 좋아했거니와 작업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적당한 곳을 찾던 중 불국사 주변인 이곳에 정착하게 됐다고 한다. “우측의 야산이 있는 골목쪽은 환경정비를 하고 꽃길 등을 조성하면 이 일대가 환해질 것입니다. 작은 벤취를 두고 오솔길을 활용할 수도 있을 거구요. 또 이 주변 골목마다 벚꽃과 아름드리 은행나무가 가로수로 조성돼 있어서 골목골목의 테마가 다르게 만들어질 수 있는 여건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장점을 잘 부각해 특히 불국사 석굴암을 가장 기본적으로 찾는 외국인과 방문객들이 이곳을 찾는다면 그들의 감성 소비를 할 수 있는 일번지가 되겠지요”라고 했다. 이철진 작가가 준비하고 있는 이 공간은 작품도 감상하고 차도 한 잔 할 수 있는 갤러리형 작업 공간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이 공간 맞은편 건물 벽에는 춘심이가 벽화로 그려져 있는데 거리가 환해졌다며 주민들이 좋아한다고 전했다. 향후 또 다른 벽에도 부조 형식의 춘심이를 다시 하나 더 그려 포토존으로 꾸밀 생각이라고 전했다.
-옛 영화(榮華)에 현대적 생기를 더한다면 불국신택지길은 지속적으로 롱런(LongRun)할 수 있어 아직은 가게들의 밀도가 낮았지만 이 일대의 변화는 이미 감지됐다. 오랫동안 침체돼 있었던 이 거리에서 주민들의 희망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이다. 시원시원한 대로와 바둑판의 정확한 골목길은 황리단길에 비해 아기자기한 맛은 덜했으나 오랜 수령의 가로수가 더욱 운치를 더하고 있어 느린 걸음을 걸을 수 있는 거리였고 골목이었다. 최근 형성되고 있는 작은 가게들의 점주들에게선 아직은 상흔보다는 넉넉한 인심이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발전을 도출하기 위해선 상인간 협조와 공생의 길을 걸어야 하는 과제가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였다. 무엇보다 관광객들이 불국사 주변 이 거리의 아름다움을 모른다는 것이 아쉬웠다. 거리 전체에 쉴 수 있는 공간을 꾸밀 수 있도록 상인들이 각자 노력해 총총하게 가게들이 생기고 아기자기한 맛이 더해진다면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거리가 될 것이다. 옛 영화(榮華)에 현대적 생기를 더한다면 불국사길은 지속적으로 롱런(LongRun)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