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경주 K공고에 재직하고 있을 무렵 또 하나의 이야기다. 이 분은 수업시간에 책을 안 들고 와서 수업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그것은 그때 책 없이 교실에 들어오는 선생이 실력 있는 교사로 평가받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출석부와 분필 한 개만 달랑 들고 수업시간에 문을 열고 들어온다. 다른 교사들은 정중히 걸어서 교실에 들어가는 것이라면 그는 그런 속박에서 벗어나 그냥 산책이나 소풍 나가는 사람처럼 특유의 몸가짐으로 교실에 들어선다. 그는 항상 얼굴이 부스스하여 마치 잠자다가 뛰쳐나온 사람 같았다. 학급실장의 “차렷! 경례!” 가 끝나면 수업의 시작부터가 농담이다. “선생님, 오늘 세수 했능교?” 어느 학생이 농담을 던진다. 고무신은 얼른 받아 “야, 이놈들아. 세수를 어째 나날이 하노” 아이들이 와 하고 웃는다. 그는 다시 정중한 태도를 억지로 지어가면서 한 수 덧붙인다. “세수를 어찌 나날이 하며 목욕을 어찌 다달이 하노” 아이들이 또 와하고 배꼽을 잡는다. 매번 수업이 그랬듯이 책 없이 수업을 시작한다. 무조건 몇 페이지를 펴라고 해 놓고는 어제 밤 술집에서 있었던 일부터 시작하여 한 시간 동안 잡담과 패설로 일관해 간다. 그러다가 마침 종이 울리면 그는 교무실로 가지 않고 교실 구석자리에 앉아서 담배를 피운다. 당시 고등학생들은 연령도 높고 성숙해서 장가를 든 학생들도 있었다. 그는 일부러 담배를 손에 들고 “얘들아 여기 담배 두고 가는데, 내 담배에 손대면 안된데이-” 했다. 고무신 선생이 화장실 간 뒤에 곧 학생들이 몰려와서 한 갑 담배를 다 빼내어 피워버린다. 다시 교실에 돌아온 고무신은 미리 예견이라도 했듯이 빈 담배 갑을 들고서 학생들 앞에 보라는 듯이 빙그레 웃고는 빈 담배 갑을 구겨서 휴지통에 버린다. 그는 그 만큼 자유분방한 시인 교사였다. 그렇기 때문에 학생들 사이에 고무신의 인기는 대단했었다. 그는 쉬는 시간마다 운동장에서 축구를 자주 했다. 원래 축구는 혼자서는 못하는 경기이기 때문에 머리에 떠오르는 생각 하나. 그것은 각 학반 실장을 운동장에 불러내는 일이었다. 그는 방송실에 가서 스피커에 대고 “각반 학급 반장은 지금 즉시 운동장에 모여”하고 방송을 한다. 영문도 모르고 운동장에 나온 각반 실장들은 그대로 집합을 했다. 집합한 실장들을 이유 없이 따귀를 한 대씩을 갈기고는 “얘들아, 우리 공 차자”한다. 어이없는 실장들은 어쩔 수 없이 운동장에서 고무신 선생과 축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정민호(시인. 동리목월문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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