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 -백석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나타샤를 사랑은 하고눈은 푹푹 날리고나는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신다소주(燒酒)를 마시며 생각한다나타샤와 나는눈이 푹푹 쌓이는 밤 흰 당나귀 타고산골로 가자 출출이 우는 깊은 산골로 가 마가리에 살자눈은 푹푹 나리고나는 나타샤를 생각하고나타샤가 아니올 리 없다언제 벌써 내 속에 고조곤히 와 이야기한다산골로 가는 것은 세상한테 지는 것이 아니다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눈은 푹푹 나리고아름다운 나타샤는 나를 사랑하고어데서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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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버리고 순수해질 수 있는 용기 며칠 전 반월성에 때 아니게 내린 눈을 핸드폰으로 찍어 내게 보내오면서 지인이 적은 제목은 ‘벚꽃 피다’였다. 아닌 게 아니라, 가지에 가득 내린 눈은 활짝 핀 벚꽃과 닮아 있었다. 눈을 기다리는 마음을 어디에다 견줄 수 있을까. 아미 인류가 생긴 그 시절부터 내리는 눈을 보라고 연인들은 감탄사를 연발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눈은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한 신파’가 아닐까. 오늘은 저 30년대 모던 보이, 이제 우리 민족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이 된 백석의 참으로 낭만적인 시 한 편을 만난다. 억세게 쏟아지는 눈발이 “혼자 쓸쓸히 앉어 소주(燒酒)를 마”시는 나에게 환상을 부른다. “가난한 내가/아름다운 나타샤를 사랑해서/오늘밤은 푹푹 눈이 나린다”다고. 눈이 어떻게 개인의 사랑 때문에 온단 말인가. 자연현상이 자신의 감정으로 치환되는 이런 주관성과 조사활용을 통한 감정의 변화표출이 이 시의 낭만성의 출발점이다. 연상은 이어져 흰눈은 나타샤를, 나타샤는 흰 당나귀를, 흰 당나귀는 산속 마가리(오막살이)를 계속해서 데리고 온다. 마침내 “흰 당나귀도 오늘밤이 좋아서 응앙응앙 울을 것이다”라는 정서의 극점에 다다른다. 눈이 “푹푹” 내리는 날(북방지역에서 눈은 “펄펄”을 넘어서 “푹푹”으로 내려 쌓인다.), 시인은 온통 자신의 정서에 젖어 사랑하는 연인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 연인과 눈은 더러운 세상과 대비된다. 더럽다는 말은 이 시인이 세상에서 받았을 상처를 짐작하게 해준다. 그러기에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대목도 “세상 같은 건 더러워 버리는 것이다”라는 구절이다. 사랑이며 그리움은 우리 생의 가장 본질적인 화두다. 그것 때문에 세상을 버릴 용기가 내게도 있었던가. 아니 ‘용기’보다는 ‘순정성’이 좋겠다. 부모도 없는 고향집이지만, 명절을 맞아 그곳으로 향하는 마음이 눈보다 희다. 설날은 세상이 준 더러움을 버리고 고향이 내게 준 어린 시절의 순수를 회복하는 날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