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이나 법당 앞에 석등(石燈)이 있다. 본래 석등은 어둠을 밝히는 것이지만 불국토를 장엄하면서 무명(無明)*을 밝히는 지혜, 부처의 가르침, 깨달음 등을 상징한다. 그리고 역대 조사님의 가르침이 전해지는 것을 전등(傳燈)이라고도 한다. 이 등과 관련하여 『현우경(賢愚經)』 「빈녀난타품(貧女難陀品)」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코살라국 사위성에 난타라는 가난한 여인이 살고 있었다. 그녀는 구걸로 겨우 생계를 이어 갈 정도로 가난했다. 하루는 부처님이 사위성에 오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파세나디왕과 모든 백성이 등불 공양을 올리기 위해 분주히 움직였다. 이때 난타도 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분을 위한 등불 공양을 올려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루 내내 구걸해 얻은 돈 두 닢을 들고 기름집을 찾아갔다. 주인은 여인의 갸륵한 정성에 감동하여 기름을 갑절이나 더 주었다. 난타는 기쁨에 넘쳐 등에 불을 밝혀 부처님께 바쳤다. 그날 밤 세찬 바람이 불어 다른 등불은 다 꺼졌으나 난타의 등불만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등불이 다 꺼지기 전에는 부처님이 잠을 자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아난이 가사 자락으로 등을 끄려 하였으나 꺼지지 않았다. 이때 부처님이 아난에게 말했다. “아난아, 부질없이 애쓰지 말라. 그것은 가난하지만 마음씨 착한 한 여인의 넓고 큰 서원과 정성으로 켠 등불이니 결코 꺼지지 않으리라. 그 등불의 공덕으로 이 여인은 앞으로 30겁 뒤에 성불하여 그 이름을 ‘수미등광여래(須彌燈光如來)’라 할 것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에 있는 석등은 우리나라 석등 중에서 가장 기본에 충실한 석등으로 알려져 있다. 이 석등은 전체적으로 8각형의 평면구도이다. 하대석은 네모난 지대석과 같은 돌로 조성됐는데, 윗면에는 복엽8판의 복련이 새겨져 있고 그 위로 각형 2단의 간주석 받침이 있다. 하대석 위의 8각형 간주석은 아무런 장식이 없는 순박한 모습인데, 이는 현존하는 것으로는 최초의 사례라고 한다. 한 개의 돌로 조성된 상대석은 평면으로 8각형인데 각형 2단의 받침 위로 하대석과 같은 형식의 복엽 8판의 앙련이 조각돼 있다. 상대석 윗면 2단의 받침 위에 화사석이 있다. 화사석 4면에 화창을 뚫었고 화창의 주변에는 1단의 턱을 형성하여 구획한 뒤 상·하와 좌·우로 10개의 구멍이 있다. 이는 문비를 달았던 흔적으로 추정된다. 이 화창은 부처님의 진리가 사방으로 두루 비치고 있음을 상징한다. 그런데 이 석등의 화창을 통해 대웅전의 주존인 석가모니 불상이 그대로 보인다. 이를 사진으로 소개하는 글을 읽고 일부 사람들은 석등 속에 불상이 들어있다고 하여 신기해하기도 한다. 한 개의 돌로 조성된 옥개석 역시 8각형의 평면구도를 보이고 있는데, 하단에는 2단의 받침을 새겼다. 낙수면은 전각에 이르러 경쾌한 반전을 보이고 있다. 옥개석의 상면에는 복엽8판의 연화문이 복련대를 이루고 있고, 이어 1단의 받침을 두고 그 위에 연봉오리 형의 보주가 있다. 석등의 앞에는 전면과 측면에 각각 안상을 새긴 장방형의 배례석이 있다. 『불국사고금역대기』에서는 이 배례석을 봉로대라고도 하는데 향로를 올려놓고 향을 피우던 곳이다. 노자 『도덕경』 제45장 「홍덕(弘德)」에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 구절이 있다. ‘큰 기교는 마치 서툰 듯하다’는 뜻이다. 여기서의 졸은 그냥 단순히 서툰 것이 아니라 겉으로는 서툰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기교의 최고 경지에 있다는 것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의 이 석등은 8세기경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데 간주석에 아무런 장식이 없는 등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히고 소박한 느낌을 주고 있어 ‘대교약졸’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십이연기(十二緣起)의 하나로 잘못된 의견이나 집착 때문에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마음의 상태이다. 모든 번뇌의 근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