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민이 가진 이야기가 가득하게 스며 있는 곳. 바로 그들이 살고 있는 골목들이다. 우리는 크고 넓은 대로변에서 담장을 꺾어 돌아 만나는 골목길에서 소소한 행복감을 기대한다. 유년기와 성장기, 청장년기의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골목길에서 옛 추억에 잠기고 걷고 싶어한다. 숨어 있는 보물을 찾듯이 골목길은 일상을 치유하는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일상적 삶이 역사를 구성하는 것이다. 전국적으로 거리나 골목이 부상하고 그것이 자본화 되고 있다. 저마다의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 그 자체가 결국은 관광의 포인트로 작용하고 있으며 기억을 존중하는 장소를 열망하기에 이르렀다. 느닷없는 의외성에 대한 환타지가 골목속에 숨어있는 것이다. 현재 경주 도심 상가들이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푸념만 할 것인가. 골목의 회생을 통한 희망적인 접근을 통해 도심의 활력을 되살릴수 있는 방안은 분명히 있다. 그 답을 찾기위해 이번호부터 경주의 골목들을 찾는다. 경주의 원도심(原都心)을 중심으로 도심 주변지역, 외곽 지역 등으로 크게 나누고 각 지역의 특색있는 사람 사는 냄새 진한 골목을 자본화 할 수 있고 관광화 할 수 있는 방안을 도출해보고자 한다. 각계의 전문가들 조언을 곁들여 골목의 실체에 대한 다양한 의견과 향후 개선방향과 발전 방안을 들어볼 예정이다. 그 첫 번째로는 경주 원도심이다. 도시의 속살을 가장 적나라하게 들여다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도심의 골목이다. 도심은 시민들이 오랜 시간 동안 살면서 드나들며 갈증을 해소하던 공간이었다. 최근 도시재생에서 골목길 활성화가 대두되고 있다. 구도심에 있는 골목길의 상권을 살리고 사람들이 찾도록 해서 경기를 살리자는 것. 대전시는 원도심 골목투어를 실시하고 있으며 대구도 근대골목 투어를 시행하고 있다. 부산원도심 골목길축제나 광주시나 군산시도 그 열기가 가열차다. 전주 구도심 골목에서는 골목 문화프로젝트가 추진돼 주목을 받고 있다. 각 지자체는 이미 원도심의 특색을 살려 원도심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 골목문화 해설사들도 이미 다른 도시에서는 도입해 활동하고 있다. 경주시도 도시재생뉴딜사업을 비롯해 다양한 공모사업을 통해 경주의 발전을 이끌 예정이다. 도심의 골목에서 만나는 의외의 카페나 식당, 옷가게에서 만나는 기억과 추억 한 자락은 경주시민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명동쫄면, 대화만두, 황남빵, 대전소리사, 제일서점 등 지역민과 오랜시간 함께 해 온 가게들과 신생가게들 속 도심을 경주대 시각디자인학과 고경래 교수와 함께 찬찬히 걸어보았다. 경주 도심로는 중앙로, 원효로, 계림로, 동성로, 북정로 등으로 구성돼 있다. 기자도 처음 걸어보는 장소들이 골목구석구석에 숨어 있었다. 도심을 재발견하는 기쁨과 함께 도심 골목 곳곳에는 ‘경기가 어렵다’는 불안한 정서가 가득해 우려되기도했지만 도심의 스토리가 도시를 만든다는 면에서 여전히 희망적이었다. -시내 중심에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던 계림로 106번길, ‘벽화골목’으로 화사한 변신 2017년 11월, 구도심 중심가 골목길인 계림로 106번길이 ‘계림로 벽화골목’으로 변신해 방문객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이후 부쩍 이 골목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경주시내 중심가 골목인 구 신라백화점 맞은편에서 경주우체국에 이르는 155m가 그것이다. 시내 중심에 있지만 눈에 잘 띄지 않던 짧은 골목길이다. 원룸, 게스트하우스, 기념품가게, 리모델링한 한옥 카페, 식당 등이 있어 꽤 많은 국내외 관광객이 드나드는 골목이기도 하다. 이 지역 황오동주민센터에서 경주 도심관광 활성화에 관심을 가진 주민들과의 협조로 ‘계림로 벽화골목’ 사업을 추진해 어둡던 골목을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변모시켰다. 골목상권 활성화에 일조하고 있어, 건물과 골목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살린 벽화작품 10여 점이 추가로 조성되기도 했다. 고경래 교수<인물사진>는 “벽화거리는 임시방편으로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지역 작가들이 참여하고 정겨운 느낌이 들도록 이야기 거리를 만들었다는 것은 고무적이죠”라고 했다. 이 벽화 거리 끝자락에는 일명 외국인 거리인 ‘차이나 거리’에 닿아 있다. 이 골목 바로 옆 골목길에도 벽화길이 조성돼 있었는데, 명작들이 프린팅된 형태로 구석구석의 건물벽을 화사하게 꾸미고 있었다. 골목에 디자인을 더해 푸근한 정취와 함께 한층 밝아진 안전한 골목길로 재탄생해 주민들로부터도 호응을 얻고 있는 것이다. 벽화골목에서 만난 한 시민은 “벽화가 조성되고 골목의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며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표정도 밝아지고 이 골목을 걷고 싶어졌다”고 했다. -쓰레기 넘치던 골목, 꽃으로 해피 바이러스 전파 “이 골목에서 향기가 넘치기를 바래요” 꽃을 가꿔 쾌적한 도심상가 골목길 조성에 나서고 있는 이도 있다. 지난해 봄부터 중부동 중심상가인 계림로 95길 골목이 꽃 골목으로 가꿔지기 시작했다. 이 골목 한 점주의 오롯한 노력이 골목의 확연한 변화를 이끌고 있는 것이다. 이 골목 점주인 김현지(옷가게 ‘인연’ 운영)씨는 이 골목길에 사계절 내내 상가 앞은 물론, 골목입구까지 각종 화분을 배치해 행인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해피 바이러스를 전파하고 있는 주인공인 셈이다.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지저분한 골목길을 김현지씨의 자발적인 노력으로 찾고 싶은 골목으로 변신시킨 것. “이 골목 입구쪽에 쓰레기가 넘쳐나서 여름에는 이틀에 한 번씩 물청소를 해야 했어요. 거리가 깨끗해야 사람들이 찾고 싶은 것 아닌가요? 지난 한 해 동안 거의 매일 꽃을 사들여왔어요. 옷 팔아 꽃을 사들였죠(웃음). 사재를 털어서라도 굳이 꽃을 들여온 것은 사람들이 사진도 찍으면서 한결같이 너무 행복해하는걸 보니 돈이 아깝지 않아서였습니다. 저는 이 골목에서 향기가 넘치기를 바래요. 앞으로도 이 거리를 살리고 싶어요. 시내 상권이 살아야 저희도 살 수 있으니까요. 황리단길 만이 능사가 아니잖아요”라면서 담배나 휴지 조각들을 화분에 마구 집어넣고 가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라며 함께 꽃을 아껴줄 것을 당부했다. “비용도 만만치않은 이 꽃들을 혼자서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은 이 골목을 ‘힐링 골목’이라며 일부러 찾아오고 볼 일 보러 왔다가는 꼭 한 번 걷고 간다는 이들이 있어서입니다” -시민들 자발적인 움직임 존중하고 그들이 신나게 골목 가꿀 수 있는 지원과 관심 있어야 김씨를 만난 그 골목을 걷다보니 명동떡볶이집, 새로 생긴 생맥주집, 아직 성업중이라는 오래된 전당포, 옷가게 등이 이어졌다. 나지막한 가게들이 이어져 있어 드라마 세트장 같은 풍경이 간혹 나타났다. 고경래 교수는 “이 구간은 수년전 바닥 공사를 해 더욱 걷고 싶어졌습니다. 거리가 깨끗해지니 더욱 재밌어진 경우죠. 옛 것을 살리면서도 개선해야 할 곳을 고치면 더욱 매력적으로 변모합니다”라고 했다. 두 사람도 못 걸을 아주 좁고 짧은 골목을 일부러 걸어 본다. 대화만두가 나타나는 골목이었다. 고 교수는 “이런 골목에 작은 벤취를 조화롭게 설치해 골목 풍경을 형성해 잠시라도 쉴 수 있다면 머물게 될 것입니다. 경주 도심이 살 길은 골목길입니다. 이미 큰 길거리는 바꾸기 쉽지 않지만 작은 골목길에는 옛 모습이 많이 남아있어 그것을 골목 콘텐츠로 가꿔야 합니다. 때로는 경주시가 주도할수도, 혹은 시민이 자발적으로 변화를 이끌수도 있겠지요. 자발적으로 골목을 가꾸는 이에게는 좋은 뜻을 가지고 하는 일이 힘들지 않도록 지원해주는 방안을 강구했으면 합니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움직임에서 시작의 단초를 끄집어내고 그들이 신나게 골목을 가꿀 수 있는 지원과 관심이 있어야겠습니다”라면서 골목마다의 개성에 따라 독특한 콘텐츠가 도출된다면 골목을 찾는 재미가 늘 것이라고 했다. -“대로변 아닌 이 골목은 다소 상권이 침체된 구역이었지만 저희가 살려보고 싶었습니다” 외국인 거리에서 이어지는 동성로 일대에는 비어있는 가게가 유독 많다. 중앙로 패션의 거리는 도심에서도 가장 핫한 거리다. 가게마다 겨울 상품을 본격적으로 세일하는 풍경들이었다. 중앙로 36번길 상가와 상가 사이로 걷자 또 다른 작은 골목이 나타났다. 랜드로바 맞은편 골목인데 기자도 평소에는 잘 들여다보지 않았던 처음 걸어보는 골목이었다. 이동전화가게, 햄버거집, 매력적인 카페와 한식당이 정연하게 마주보고 있고 옷수선집, 식당 등 작은 가게들이 이어졌다. 울시 맞은편 중앙로에 또 다른 긴 골목이 나타난다. 이 길에도 벽화가 등장한다. 옛 막걸리 집을 개조한 쿠치나 이탈리아 식당과 조화를 이룬다. 역시 골목은 재밌다. 예기치 못한 막다른 길에서 색다른 길이 등장하고 개성있는 장소가 나타나기 때문이다. 좁은 골목사이로 느닷없이 발견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이 골목도 그랬다. 노동동 어바웃 커피집을 돌아서는 아주 예쁜 골목에는 돈가스집과 퀼트집이 있고 마주보고 있는 딩동텐동이라는 소바 전문점이 보였다. 소바 전문점을 운영하는 청년(김철민(27), 권준호(25))들을 만났다. 이들은 창업을 위해 그간 준비를 해왔다고. 골목을 살리려 노력하고 있는 의지와 노력들을 만날 수 있었던, 그래서 희망적이었던 경주 토박이 청년들이었다. 화생의원이라는 의원집을 개조해 일층만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가게 안에 옛 간판을 그대로 보존해 이 건물의 정체성을 나타내주고 있어 신선했다. 김철민씨는 “개업한 지 석달째입니다. 대로변이 아닌 이 골목은 다소 상권이 침체된 구역이었지만 살려보고 싶었습니다. 경주 시내상권에는 밥집이 거의 없고 옷가게들이 많았던 것에 촛점을 맞추었습니다”라고 했다. 2030세대들이 시내를 찾았을 때 그들을 대상으로 한 밥집을 고안해낸 것이다. “그런데 다양한 연령대가 찾아주셔서 입소문을 타고 꾸준하게 손님들이 늘고 있습니다. 이 골목은 대로변에 있는 상가를 가기 위한 지름길로만 알고 있어서 그냥 지나치는 골목이었는데 그 길목에서 한번쯤 저희 가게에서 발길을 멈춰 맛보고 쉬어 가셨으면 좋겠습니다” 원도심 속 새로운 골목의 발견이었다. 골목이 주는 아름다움에 푹 빠졌다. 원도심은 오랜 가게와 새로운 가게들의 조화로 여전한 저력을 가지고 있었다. 경주 시민의 시간적 공간적 켜가 쌓여있는 도심은 여전히 내공을 간직하고 있었던 것이다. 원도심 구석구석에서 열정을 불사르는 사람들이 있어 희망적이었고 소상공인의 열정과 도전, 자신감도 엿볼 수 있었다. 이것들은 원도심 재창조의 강력한 근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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