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랍어 시간 - 한강
문학동네 / 194쪽 / 10,000원
말을 잃어가는 한 여자의 침묵과 눈을 잃어가는 한 남자의 빛이 만나는 순간을 그리고 있다. 열일곱 살 겨울, 여자는 어떤 원인이나 전조 없이 말을 잃는다. 말을 잃고 살던 그녀의 입을 다시 움직이게 한 건 낯선 외국어였던 한 개의 불어 단어였다. 시간이 흘러, 이혼을 하고 아이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다시 말을 잃어버린 여자는 죽은 언어가 된 희랍어를 선택한다. 그곳에서 만난 희랍어 강사와 여자는 침묵을 사이에 놓고 더듬더듬 대화한다. 한편, 가족을 모두 독일에 두고 혼자 한국으로 돌아와 희랍어를 가르치는 남자는 점점 빛을 잃어가고 있다. 그는 아카데미의 수강생 중 말을 하지도, 웃지도 않는 여자를 주의 깊게 지켜보지만 그녀의 단단한 침묵에 두려움을 느끼는데….
[이 책을 읽고]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녀. 그것도 모자라 한순간 말(語)까지 할 수 없게 된다. 말(語)을 찾기 위한 그녀만의 방식으로 찾은 희랍어 시간. 그곳에서 시력을 잃어가고 있는 그를 만나게 된다.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만난 그와 그녀는 뜻밖의 사건으로 하룻밤을 같이 보낸다. 늦은 밤 그는 그녀를 위해 “지금, 택시를 부르겠어요.”라고 하자, 말을 할 수 없는 그녀는 그에게 다가와 손가락으로 그의 손바닥에 ‘첫 버스를 타고 갈게요.’라고 적는다. 2019년 기해년 새해가 밝았다. 모든 것을 잃어버린 그와 그녀가 다시 사랑을 시작하듯이 우리도 새로운 시작을 두려워하지 말자. -북리더독서회 김기상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