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에 있는 젊은 시인 이재행(李在行)이 우연히 경주에 와서 청마시비를 보고 잘못된 구절을 발견하고 그것이 매일신문에 기사화되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청마를 사랑하는 경주의 문인들이 이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경주문협 회원들이 모일 때마다 입과 입으로 청마 시비(詩碑)에 잘못 새겨진 오류를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참다못해 고무신 박종우 선생이 연탄 가루에 시멘트를 섞어 ‘함께’에 메워 ‘한개’로 만들어 놓았다. 그것이 어찌 영원하랴. 비바람에 씻겨 일 년도 못 가서 떨어져 다시 ‘함께’로 환원 되어버렸다. 그런대로 세월이 흐르고 해마다 청마백일장이 이 시비 앞에서 거행되었다. 행사 때마다 와서 보는 사람들이 청마시비에 대한 사연과 이론이 구구하여 무척 가슴 아픈 일로 남게 되었다.
70년대 불국사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청마시비가 불국사 경내로 들어가게 되었다. 이 사업을 담당한 불국사와 경주시에서는 청마시비를 옮겨 확장[移場]하게 되었다.
당시 지부장으로 있던 이근식 선생에게 공문으로 통보가 왔었다. 경주문협에서는 옮기되 시비의 주변정비 및 미화에 이르기까지 일임하여 해달라고 위임하여 지금의 그 장소에 다시 세워지게 되었다. 시비가 있는 주위의 환경적인 미화는 훨씬 더 좋아지게 되었다.
어느 해 청마백일장을 앞두고 잘못 새겨진 글자를 고치기 위하여 고심 끝에 석보(夕步) 김봉환이 특수방법으로 고안된 돌가루에 약품을 섞어 사용하여 글자에 메워 바르고는 석공에 의하여 다시 새기게 되었다.
처음에는 감쪽같았는데 역시 돌이라 세월을 견딜 수가 없게 되었다. 지금 보면 획이 떨어져 나가 서툰 모양 그대로 남아있게 되었다. 시비(詩碑)를 다시 세우지 않는 한 잘못된 글자는 어쩔 수 없이 깊은 사연과 함께 영원히 남게 되었다.
-정민호(시인. 동리목월문학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