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시간이 되자 조명이 꺼지고, 지휘자가 무대 앞 피트에 등장한다. 그는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고선 이내 오케스트라를 지휘하기 시작한다. 무대 막이 아직 오르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이때 피트에서 연주되는 음악을 보통 서곡(overture)이라 부른다. 논문이나 보고서를 써 본 사람이라면 서론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잘 안다. 서론은 글 전체에 대한 방향을 제시한다. 오페라도 마찬가지다. 서곡은 오페라 전체의 분위기를 암시한다. 서곡의 이런 기능은 18세기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개혁가 글루크(C.W.Gluck)에서 비롯되었고, 이후 19세기 독일어권 오페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1791년 초연)나 베버의 ‘마탄의 사수’(1826년 초연) 서곡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서곡의 암시 기능은 바그너 음악극의 특징인 유도동기(Leitmotiv)에 큰 영향을 미친다. 재미있는 사실은 같은 시기라도 이탈리아의 오페라 서곡이 독일과 다르다는 점이다. 로시니의 ‘도둑까치’(1817년 초연) 서곡은 무라카미 하루키가 스파게티 요리를 할 때 어울린다고 말할 정도로 경쾌하다. 하지만 도둑까치는 경쾌한 오페라와는 거리가 멀다. 즉, 오페라 서곡과 본편이 따로국밥이다. 로시니가 한창 바쁠 때는 신작에 기존 작품의 서곡을 다시 쓰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독일의 서곡과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19세기 중반부터 서곡은 보다 자유로운 형식의 전주곡(prelude)으로 바뀌는 경향을 보인다. 서곡은 뚜렷한 종결부를 갖지만, 전주곡은 종결부 없이 끝부분이 1막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베르디의 ‘리골레토’(1851년 초연)와 바그너의 ‘로엔그린’(1850년 초연)에서 서곡 아닌 전주곡을 만날 수 있다. 시간이 흘러 19세기 말이 되면 서곡이나 전주곡이 없는 오페라가 등장하게 된다. 푸치니의 히트작품인 라보엠(1896년 초연), 토스카(1900년 초연), 투란도트(1926년 초연)는 연주 시작과 함께 막이 오른다. 오페라 서곡은 하나의 악장으로 이루어진 관현악 작품이다. 그래서 어떤 서곡은 오페라의 일부에 머물지 않고 독립 장르로 떨어져 나온다. 심지어는 서곡이 본편보다 더 유명하기도 하다. 앞서 언급한 로시니의 ‘도둑까치’와 ‘윌리암 텔’, 베토벤 유일의 오페라 ‘피델리오’(서곡이 무려 4개), 글린카의 ‘루슬란과 루드밀라’의 서곡들이 대표적인 예다. 교향곡은 보통 4악장이지만, 18세기 초기 교향곡은 3악장이었다. 오페라 서곡은 이 3악장 형식에 단초를 제공했다. 17세기 바로크 오페라에서는 서곡이 신포니아(sinfonia)라는 명칭으로 쓰였고, 이탈리아의 스카를라티(D.Scarlatti)는 신포니아를 ‘빠른 부분-느린 부분-빠른 부분’의 3부 구조로 만들었다. 이것이 나중에 ‘1악장(빠름)-2악장(느림)-3악장(빠름)’의 교향곡 형식으로 정착된 것이다. 오늘날 오케스트라 연주회의 일반적인 구성(오페라 서곡-협주곡-교향곡)은 오페라 서곡에 톡톡히 빚지고 있다. 오케스트라는 아직도 당시의 서곡을 연주하고 있고, 교향곡은 서곡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교향악단을 의미하는 심포니(symphony) 오케스트라는 서곡의 다른 이름인 신포니아를 차용했으니 엄청난 빚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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