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제
어두운 방안엔바알간 숯불이 피고,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애처러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이윽고 눈 속을아버지가 약(藥)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그 붉은 산수유(山茱萸)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그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어느새 나도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옛 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는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눈 속에 따 오신 산수유(山茱萸) 붉은 알알이아직도 내 혈액(血液)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
#그 시절. 아버지가 그린 ‘성탄’의 그림
성탄 시즌이다. 흥청거리는 축제가 도심의 거리를 달구고 있다. ‘크리스마스 베이비’라는 신조어가 생길 정도로 원래의 의미가 퇴색된 성탄 풍경이 일상화된 지 오래다. 실업과 한숨이 넘쳐나는 뒷골목의 살림에도 아랑곳없이 많은 이들이 밤잠을 설치고 돌아다닌다. 눈이라도 오면 성탄 축제는 절정에 달한다. 그러나 이 시가 묘사하는 성탄의 그림은 많이 다르다. 다른 시인들이 거의 노래하지 않은 아버지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의미가 변용된다. 약국도 병원도 가깝지 않았던 시골, 한 아이가 열병으로 애처로이 잦아들고 있다. 그때 아버지가 눈 속을 헤치고 ‘붉은 산수유 열매’를 따오신다. 힘없는 아이는 감사의 말 대신 서늘해진 아버지의 옷자락에 ‘열(熱)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빈다. 때는 12월 하순, ‘어쩌면 성탄제(聖誕祭)의 밤이었을’ 것이다. 눈과 산수유 열매, 열과 서느런 옷자락이 대비되는 그 선명한 기억은 화자의 내면 속에 수십 년이나 잠재되어 있다가 불쑥 터져나온다. 바로 ‘반가운 옛날의 것’, 눈의 서늘한 감촉 때문이다. 그러나 눈은 내려 우리의 쓸쓸한 마음을 달랜다지만 오늘의 세상이란 얼마나 어둡고 추운 곳인가. 따뜻하고 포근한 인정이라는 ‘옛 것이란 거의 찾아볼 길 없는/성탄제(聖誕祭) 가까운 도시’에서 화자는 아버지의 사랑이 아직도 자신의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것을 깨닫는다. 이 아름다운 사랑의 그림은 시인의 가슴 속에 아기 예수의 탄생만큼이나 따뜻하고 포근한 것으로 남았다. 그래서 시인은 서구의 성탄이 아닌, 우리의 유가적(儒家的) 전통 속에서 ‘성탄’이라는 말을 새로이 발굴하고 형상화해냈다. 확실히 ‘성탄제(聖誕祭)’는 시인의 시안(詩眼)이 발견해낸 가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