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가운 바람에 움츠리는 겨울, 우양미술관 2전시실에서는 무한한 상상력을 자극하는 흥미로운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인터스페이스’라는 주제로 백성혜, 장준석, 하광석, 하원 등 4인의 작가가 초청돼 관람자의 시각과 청각, 지각을 자극하는 작품들을 선보이는 것. 인터스페이스는 작품과 관람자 사이에 존재하는 시·공간을 지칭하는 것으로 관람자가 작품의 경계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열린 공간을 뜻한다. 또 작품에서 야기되는 환영을 통해 작품의 의미를 스스로 생성 할 수 있는 창조적인 공간도 속한다. 동시대 미술은 이미지와 텍스트가 명확하거나 필연적인 연관관계를 드러내는 대신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을 선호함에 따라 관람자의 역할이 변화해왔다. 이에 따라 작품에서 관람자의 능동적인 행위가 강조돼 미적 체험의 형태가 확장되고 전시공간은 무한한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전환되고 있다. 이번 전시는 평면회화, 설치, 미디어아트 등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시·공간을 실험하는 작가들의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관람자의 시선과 움직임을 연결하는 등 작품의 다면적인 성격에 참여할 것을 권하는 관계 지향적 요소들을 배치해 관람자의 능동적인 선택과 해석이 가능한 구조의 작품들을 소개한다. 참여 작가 백성혜의 작품은 푸른빛 가득 우주공간과 같은 몽롱한 화면을 구성한다. 화면은 가상세계의 이미지로 외경스러운 공간을 암시하고 있지만 헤아릴 수 없는 붓질의 반복을 통해 작가는 억겁의 인연을 작품을 통해 말하고 있다. 글자를 입체 조형으로 바꾸는 작업을 주로 선보이는 장준석 작가는 도형적인 특성과 아름다움을 품고 있는 문자를 통해 자신과 사회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하광석 작가는 실재와 가상을 주제로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그의 작품 ‘Reality illusion’은 작품의 공간 전체가 푸른색 빛과 바람에 따라 일렁이는 나뭇잎의 그림자가 사방으로 가득 차 있는데 관람자가 작품에 들어선 순간 작품의 환영 이미지가 온몸을 둘러싸는 체험을 할 수 있다. 하원 작가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는 입체그림 렌티큘러 작품을 주로 선보이는 작가다. 그의 작품 ‘Digital eclipse’는 긴 운동화 끈들을 촘촘히 매단 이동식 화면에 붉은 해와 검푸른 일식 현상이 아주 느린 속도로 지나가는데 관람자의 움직임이 작품에 또 다른 일식을 만들어내기도 전시장에 퍼지는 종소리, 바람소리, 땅의 우림 등의 음향에 영향을 미치는 등 관람자가 작품과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경험이 이색적이다. 4인의 작가들은 하나같이 전시 공간 전체를 활용해 시간과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작품들을 선보이고 있다. 그리고 관람자는 작품과 자신을 분리할 수 없는 경험 속에서 공간을 지배하는 주인공이 되기도, 자신의 관점을 결합해 새로운 의미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무한한 공간 속 시간 여행이 이곳에서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박혜령 학예사는 “요즘은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그림의 이미지와 의도가 예전과 같지 않아요. 현대미술은 이미지와 의미가 완벽하게 겹쳐지지 않죠. 관람자의 작품에 대한 해석 또한 개방돼있어요. 작품을 직접 체험하면서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내기도 하며, 작품의 일부가 될 수도 있는 것처럼 관계지향적인 요소가 포함된 이번 전시를 통해 현대미술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라고 말했다. <인물사진> 전시는 내년 6월 9일까지며, 관람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입장종료 오후 5시 30분)까지 가능하다. 주말 오전 11시와 오후 4시에는 전시해설을 들을 수 있으며, 매주 월요일 휴관이다.#입장요금 성인 5000원, 학생 3000원, 어린이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