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는 오케스트라가 당연히 ‘악단’을 의미하지만 원래는 장소적 개념이었다. 고대 그리스 시대의 원형극장에는 무대 앞에 악단이 앉는 공간이 따로 있었는데, 이를 ‘오케스트라’라고 불렀던 것이다. 달리 말해 당시에는 악단이 오케스트라라고 불리는 ‘장소’에서 음악극 연주를 했다.
세월이 흘러 16세기 말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오페라가 태동했다. 그리고 17세기에는 오페라극장 건립 붐이 일기 시작했다. 이 극장들은 구조상 고대 원형극장의 연장선에 있다. 즉 동심원을 이루고 있던 객석이 서너 개 층의 귀족용 박스 석으로 진화하고, 1층 공간은 평민들의 차지가 되었다. 악단은 고대 원형극장처럼 여전히 무대 앞에 위치했다. 하지만 그들을 부르는 이름은 장소 명칭에 따라 ‘오케스트라’가 되었고, 한동안 오페라와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유지했다.
오케스트라가 오늘날처럼 피트(pit)라는 구덩이에 들어간 건 대략 19세기부터라고 한다. 모차르트(1756-1791) 시대만 하더라도 오페라 악단의 규모는 30명 정도였다. 그래서 악단의 연주소리가 가수의 노래소리를 방해하진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들어 낭만주의 오페라에서 오케스트라의 규모는 비약적으로 커지게 된다. 그냥 두면 가수의 노래가 악단의 연주음에 묻히게 될 정도였다. 결국 오케스트라는 성악을 살리기 위해 무대 앞에 구덩이를 만들어 들어가야만 했다.
구덩이에 빠진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 오페라의 반주 역할에만 안주하진 않았다. 성악 없는 기악곡, 특히 교향곡이 사랑을 받으면서 오케스트라는 독자적인 지위를 얻게 되고, 곧 피트를 빠져나와 콘서트홀 무대의 주인공으로 자리 잡았다. 이리하여 오케스트라만의 독자적인 연주회는 오늘날 일반적인 형태가 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인 빈 필하모닉(Wiener Philharmoniker)이다. 1842년 빈 궁정 오페라극장(오늘날의 빈 슈타츠오퍼)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독자적인 연주를 위해 따로 만든 단체가 바로 빈 필하모닉이다. 단원들이 투잡(two job)을 하는 셈이다. 요즘도 밤에는 ‘피트’에서 오페라를 연주하고, 낮에는 (피트에서 나와) ‘홀’에서 자신들만의 연주회를 갖는다.
물론 처음부터 오페라극장의 피트에서 출발하지 않은 오케스트라도 있다. 베를린 필하모닉이 그렇고, 심포니(교향곡)라는 이름이 붙은 오케스트라가 대략 그렇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도 오페라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요즘 세계적인 오페라 페스티벌에서 이들의 피트 연주를 보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젠 오케스트라가 구덩이 안에 있든 밖에 있든, 이것이 오케스트라의 위상과는 큰 관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