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의 역사적 유물이 한자리에 모였다. 마치 세계의 박물관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다. 섬세한 조각은 물론 재질표현은 가히 기예에 가깝다. 믿기 힘든 건 그것이 모두 비누 조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 우양미술관은 비누조각으로 현대미술의 영역을 확장시켜 온 신미경 작가를 초청해 내년 5월 19일까지 2층 3전시실에서 ‘오래된 미래’를 주제로 전시를 갖는다.
2018 우양작가로 선정된 신 작가는 런던과 서울을 오가며 25년간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해왔다.
이번 전시에서 △이미지 없이 존재로만 있는 ‘회화 시리즈’ △14톤의 비누로 제작된 거대한 규모의 ‘건축프로젝트-폐허풍경’ △서양중세시대 삼면 형식의 대형 좌대에 설치된 ‘화장실프로젝트-화석화 된 시간에서 붓다’△동·서양 문화의 교류를 상징하는 ‘트렌스레이션-백자’ △‘풍화프로젝트-화석화 된 시간에서 쿠로스(청년)’ △풍화프로젝트 작에 금속박을 입혀 중첩된 시간을 표현한 ‘금제 유물 시리즈(신작)’ △미술관 입구에서 비바람과 날씨에 의해 풍화가 진행되는 모습을 지켜 볼 수 있는 ‘풍화 프로젝트’ △관객이 직접 화장실에서 작가의 작품으로 손을 씻어볼 수 있는 ‘화장실 프로젝트’ 등 총 230여 점의 이색적인 설치 및 조각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신 작가는 일상에서 쉽게 소모되는 재료인 비누를 이용해 서양 조각상과 회화, 아시아의 불상과 도자기, 나아가 폐허가 된 건축 잔해 등 특정 문화를 표상하는 대상물을 재현해왔다. 이는 단순한 모사가 아닌 의도적으로 대상물의 표피적 속성만을 대상으로 삼아 탈문맥화해 또다른 원본으로 전이시켜 새로운 방식으로 작동케 한다.
또 서구 편향적 근대화 의식에 대한 자각을 바탕으로 견고한 권위와 위계에 대한 의문,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따른 번역과 해석의 필연적 왜곡, 예술품 혹은 유물의 성립방식에 대한 고찰, 나아가 소멸된 흔적을 통해 가시화되는 시간의 역설적 측면 등 비누가 지닌 재료적 특징이 담아낼 수 있는 개념을 시각화 해왔다.
흘러버린 시간을 구현하는 작품의 재료로 비누를 채택한 작가는 “비누는 사라지는 것과 존재하는 것의 중간이며, 사람이 살아가는 것도 사실 살아있는 것과 사라지는 것의 중간 상태다”면서 “올해 처음 선보인 폐허풍경도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것과 사실 그렇지 않은 폐허를 다루면서 인간을 미러링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주에서는 첫 전시라는 작가는 “전시설치를 위해 경주에 머물며 감은사지 등 명소 곳곳에 둘러봤다. 천년의 시간을 그대로 간직한 문화재가 어우려져 있는 경주라는 도시에 큰 매력을 느낀다”라면서 “신라의 감성을 품은 감상자의 저마다 변화되는 해석도 작품의 일부”라고 말했다. 이어 “앞으로 한국의 역사나 문화, 전통을 응용한 새로운 작업 활동도 흥미로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신미경 작가는 1967년 충북 청주 출생으로 서울대 조소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석사 졸업, 런던 슬래이드 스쿨 조소과 석사 졸업, 영국왕립예술학교 세라믹 & 유리과 석사를 졸업했다. 국립현대미술관, 리움삼성미술관, 미국 휴스톤미술관, 서울대미술관, 일본 판화공방, 런던 브리스톨미술관 등에 그의 작품이 소장돼 있다.
전시 연계 프로그램으로는 작가가 비누작업을 시작하게 된 스토리를 토대로 대리석 무늬의 비누를 직접 제작해보는 △‘우양 원데이 클래스-대리석 비누만들기’(12월~내년 3월, 마지막 수요일, 수강료 2만원)와 △‘오래된 미래 컬러링 큐브’(컬러링 큐브에 작가의 주요작품 이미지를 채색, 무료), △‘전시해설’(주말 오전 11시, 오후 4시)이 있다. 미술관 입장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입장종료 오후 5시 30분)까지 이며, 월요일은 휴무다.입장요금 성인 5000원, 학생 3000원, 어린이 2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