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의 첫 장에 찍혀있는 젖내 풍기는 생명의 숲 계림. 김알지의 탄생 기록이 수북한 천년숨결 따라 옛날예적 출생의 비밀을 짊어지고 가는 숲속의 금궤를 열면,【三國史記】 ‘석탈해왕 9년 봄 3월 왕이 밤에 금성 서쪽 시림의 나무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릴 들었다. 날이 샐 무렵 호공을 보내 어찌된 일인지 알아보게 했다. 호공이 도착하니 숲의 나뭇가지에 금빛 상자가 걸려 있고 그 아래 흰 닭이 울고 있었다. 호공이 돌아와 아뢰자 왕은 사람을 시켜 상자를 열게 하였다. 그 속에는 용모와 자태가 빼어난 어린 사내아이가 들어있었다.
왕은 기뻐하며 측근들에게 “이 아이는 어찌 하늘이 나에게 준 아들이 아니겠는가!”라고 하며 그 아이를 거두어 길렀다. 아이는 자라면서 총명하고 지략이 뛰어났다. 이름을 ‘알지’라 하고 금빛 상자에서 나왔기에 성을 김씨라 하였다. 시림을 고쳐 계림이라 부르고 국호로 하였다’ ‘알지가 세한을 낳고 세한이 아도를 낳고, 아도가 수류를 낳고 수류가 욱보를 낳고, 욱보가 구도를 낳았으니 구도가 곧 미추의 아버지다. 첨해이사금(12대 석씨)이 아들이 없으니 백성들로 하여금 미추를(13대)왕으로 세웠다. 이것이 김씨가 나라를 다스리는 시초가 되었다’ 월성궁궐 서쪽 귀정문(歸正門) 방향으로 추정되는 계림은 한잔 차(茶)에 안민을 노래하던 충담스님 기리는 찻자리 펴기에도 안온한 수풀림이다. 삼월 삼짇날 가까운 주말을 짚어 치루는 들차회때면 계림의 봄이 꽉 찬다. 한 채의 집으로 둥지를 튼 오래된 나뭇결에 싸여 진달래꽃 화전을 부쳐 다식(茶食)을 차리고, 각지의 차인(茶人)들이 관광객들과 소담스레 나누는 차 한 잔의 의미는 찻물처럼 향그롭다. 신라 35대 경덕왕(742∼765년)때 고승인 충담스님이야기는 삼국유사에 전해지는데, 삼월 삼짇날 왕이 귀정문 누각에 올라 좌우 신하들에게 영험 있는 스님을 모셔오라 이른다. 거리를 둘러보니 화려한 차림새를 하고 근엄한 모습의 스님이 지나길래 모셨더니 왕께서 원하는 스님이 아니라고 물리쳤다. 그때 저 쪽 남산자락에서 차향 풍기는 앵통(櫻筒, 앵두나무 통)을 짊어지고 낡고 헤진 누비장삼이지만 기품서린 온화한 자태로 다가오는 스님을 보자 기쁨으로 영접하며 이름을 물으니 충담이라 했다.
음력 삼월 삼일과 구월 구일에 남산 삼화령 미륵세존께 차공양을 올리는 스님이었다. 앵통의 다구(茶具)를 꺼내 정성으로 달인 색향미(色香味) 차 한 잔 음미한 왕은 기파랑(耆婆郞)을 찬미한 사뇌가의 훌륭한 뜻을 칭송하며, 백성을 편안히 다스리는 노래 한 소절 지어달라 청한다. 왕은 충담스님을 귀히 여겨 왕사(王師)로 추봉했으나 기어이 물리쳤다.
삼국유사 깃들인 천년 전 얘기들을 곱씹으면 사람의 겉모습에 치장한 값비싼 장신구나 번지르한 외모만을 중시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을 직시할 줄 아는 경덕왕의 혜안이며, 권력을 탐하지 않는 충담스님의 청렴함을 감지하는 대목이 숙연하게 다가온다. 그리하여 찻물 베인 찻잔에 한 우주를 담아내듯 왕의 명을 받들어 충담스님 지은 향가 ‘안민가’탄생 기록은 차심(茶心) 아우런 깊이로 한량없다.『임금은 아버지요/ 신하는 사랑하는 어머니시라/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 여기시면/ 백성이 그 은혜를 알리/ 꾸물대며 사는 중생들/ 이들을 먹여 다스리니/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랴/ 나라가 보전됨을 알리./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한다면/ 나라는 태평 하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