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문사 뒤뜰 은행나무
-문태준
비구니 스님들 사는 청도 운문사 뒤뜰 천 년을 살았을 법한 은행나무 있더라그늘이 내려앉을 그늘자리에 노란 은행잎들이 쌓이고 있더라은행잎들이 지극히 느리게 느리게 내려제 몸 그늘에 쌓이고 있더라오직 한 움직임나무는 잎들을 내려놓고 있더라흘러내린다는 것은 저런 것이더라 흘러내려도 저리고와서나무가 황금사원 같더라 나무 아래가 황금연못 같더라이 세상 떠날 때 저렇게 숨결이 빠져나갔으면 싶더라바람 타지 않고 죽어도 뒤가 순결하게 제 몸 안에 다 부려놓고 가고 싶더라내 죽을 때 눈 먼저 감고 몸이 무너지는 소릴 다 듣다 가고 싶더라
-쌓이는 은행잎이 던지는 화두 가는 곳마다 은행나무 황금 잎사귀가 길바닥에 속절없이 내리는 계절이다. 노란 은행잎들은 바람이 없어도 내려 쌓인다. 자신의 몸 그늘에 내리니, 시인의 다른 시 「산수유 나무의 농사」에서처럼 그늘도 노랗다. 나무가 잎들을 내려놓는 일은 자발적인 행위다. 나무는 계속해서 오직 한 움직임, 잎들을 내려놓는 일을 그렇게 반복한다. 그래서 팔랑이며 지상으로 내려앉는 잎들은 흐름을 탄다. 그러니 흘려보내도 저리 고운 것이 은행잎이다. 마치 황금사원인 나무가 황금 연못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나 할까.
은행나무의 자발적인 내려놓음은 우리가 세상을 떠날 때 숨결을 내려놓는 행위와 닮았다. 누구나 두려워하는 죽음.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왜 죽어야 하나? 이런 반문은 누구나가 한다. 그러나 죽음을 기억하면 삶이 더욱 풍요로워 진다는 것도 사실이다. 잘 사는 것도 좋지만, 잘 죽어야 한다. 저렇게 은행나무처럼, 죽어도 뒤가 황금빛으로 곱고 순결했으면, 제 몸 안에 숨을 다 부려놓고 갔으면 싶다. 언제쯤 그렇게 될지 모르지만, 나도 눈 먼저 감고, 저 은행잎 내려놓듯 몸이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 사람이 되고 싶다. 이 늦가을 은행잎이 우리에게 주는 화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