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曰 朝聞道 夕死可矣 자왈 조문도면 석사라도 가의니라.<주석>朝 :이른 새벽 聞道 :사물의 당연한 이치를 들어 알게 된다는 말이다.道는 사물의 당연한 이치이다.<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아침에 진리를 곧 깨닫는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묵상> 여기서 문제는 도이다. 도가 무엇이기에 공자가 그토록 갈망하였던가? 이를 공자가 자기의 고국 노나라에 이상 정치가 이루어지는 것이라고도 하였으나 그렇게 좁게 보기 보다는 사물의 당연한 이치로서의 도, 곧 진리라 보는 것이 훨씬 보편적이면서 타당성을 갖는다고 할 것이다. 그 진리를 깨닫는다면 죽어도 좋은데 듣지 못한다는 안타까움이 깔려 있다. 그럼 공자가 그토록 추구한 진리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은 저마다 자기의 처지에서 말하므로 생략하는 게 오히려 현명할 것이다. 카톨릭에서는 일찍부터 도를 말씀, 곧 成肉身하신 예수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그도 또한 자기의 처지에서 수용한 것이다.-子曰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자왈 사지어도하되 이치악의악식자는 미족여의야니라.<주석>士 :덕행과 도예를 갖추면서 장차 출사할 자를 가리킨다.恥惡衣惡食者 : 악의 악식을 부끄러움으로 여기는 자를 말한다. 악은 粗劣한 것이다.<번역>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한 선비가 이미 전심으로 진리를 추구면서 도리어 자기의 입은 옷이나 먹는 음식이 좋지 않다고 이를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과는 진리를 토론할 수가 없다. <묵상> 여기서 士를 원본에 독서인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좀 어색하다. 우리말에는 “선비”라는 아주 좋은 말이 있다. 선비가 옷이나 음식에 구애된다면 선비의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요즘 세상에선 옷이나 음식으로 하여 남에게 수치를 당할 만큼 가난한 사람은 그리 흔하지 않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잘 살며 평등사회가 된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릴 때만 하여도 옷 때문에 기죽는 일이 너무도 흔하고 배고파 받는 수모 또한 엄청나게 많았다. 사실 옷이 없어 가야할 곳에 못가는 경우가 많고 한 끼의 밥을 얻어먹기 위해 허리 굽히는 일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 환경에서 이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선비란 대단하다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런데 선비의 경우 좋은 옷을 입을 수 있고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음에도 이를 거절하고 오히려 청빈을 즐긴다면 이는 칭찬할 가치가 있으나 자기가 노력하지 않고 가난함은 수치인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가짜 선비가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노동을 천하게 여기며 가난을 감수한다고 자처하는 거짓 선비 나부랭이는 참으로 이를 부끄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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