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나무 산책(30)
등나무
등나무는 콩과에 속하는 덩굴성 식물이다. 5월의 따가운 햇볕 아래서 피어나는 연보라색의 꽃송이를 포도송이처럼 주렁주렁 매달고 있는 등꽃은 보기에도 참 아름답다. 꽃에는 향기가 많고 꿀이 많아 벌들이 분주하게 꿀 채취작업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등나무는 학교의 교정이나 공원 등에 많이 심겨지는데 주로 그늘을 지어 휴식을 위한 퍼골라(pergola:덩굴식물을 올린 시렁)의 녹음수로 쓰인다. 어린 잎이나 꽃을 무쳐 먹기도 하는데 특히 꽃을 가지고 만든 나물을‘등화채’라고 하며, 종자는 흔히 볶아 먹는다.
나무의 덩굴은 바구니를 만들기도 하고 가늘게 쪼개어 한여름 땀에 젖은 옷이 몸에 붙지 않게 입는‘등거리’라는 시원한 속옷을 만들어 입기도 하였다. 또한 묘하게 꼬인 줄기로 등나무 지팡이를 만드는데 신선이나 도사가 짚고 다니는 지팡이라 하여 인기가 있었다.
그러나 한가지 알아야 할 것은 요즘 고급 가구 중에 비싼 값으로 팔리는 등가구는 여기서 말하고 있는 등나무와는 전혀 다른 나무인 것이다. 이것은 인도네시아와 같은 아시아 열대지방에서 자라며‘라땅’이라는 덩굴식물로 만든 가구이다.
등나무는「계림유사」에도 기록이 있다는 것을 볼 때 일찌기 우리 나라에서 자랐던 나무로 여겨진다. 전국에 천연기념물이나 노거수의 보호수가 많이 분포하고 있다. 부산 범어사의 등나무 자생지는 천연기념물 제176호로 지정되었으며, 서울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 제254호의 천연기념물이 있다.
우리 경주에도 천연기념물의 등나무가 현곡면 오류리 527번지에 소재하고 있으며 제89호로 지정되어 있다. 오래 전에는 두 그루씩 모두 네 그루의 등나무가 팽나무를 감고 자랐는데, 지름이 큰 것은 약 50㎝정도로 팽나무에 엉켜서 무성하게 자랐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는 나무들이 고목이 되어 팽나무가 일부 고사하고 등나무도 생육이 좋지 못한 상태이다.
신라 때에는 이 곳을 용림(龍林)이라고 하였으며 숲이 우거지고 등나무가 서 있는 곳에는 깊은 연못이 있었고 용림은 임금이 신하들을 거느리고 사냥을 즐기던 곳이라고 한다. 이 등나무를 용등(龍藤)이라고 하는데 용림에서 자라는 등나무라는 뜻이며, 생긴 모양이 용처럼 보여서 붙인 이름이다. 이 용등의 꽃을 말려 신혼 부부의 금침에 넣어 주면 금실이 좋아지고, 사이가 멀어진 부부도 이 나무의 잎을 삶은 물을 마시면 애정을 회복할 수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도“옛날 어느 마을에 아름답고 착한 두 자매가 이웃집의 청년을 사모하면서 일어나는 애닯은 전설”(문화재 경주,1990.참조)에서 유래하였다.
등나무는 산에도 많이 자생하고 있는데 경주 남산 주변의 일부지역은 등나무들이 오래되고 풍치 좋은 소나무를 감고 올라가 자람을 방해하고 결국에는 압사시키고 있어서 숲 가꾸기 차원에서 제거되어야 한다.
일이 까다롭고 뒤얽히어 풀기 어려울 때 갈등(葛藤)이란 말을 쓴다. 갈(葛)은 칡을, 등(藤)은 등나무를 가리키는 한자이다. 칡이라는 식물은 왼쪽으로, 등나무는 오른쪽으로 감아 올라가므로 이 두 식물이 한 곳에서 만나면 서로 먼저 감아 올라가려고 하기 때문에 일이 뒤얽히게 된다는 말이다.
옛날 어른들은 집안에는 등나무를 심지 못하게 하였다. 집안의 모든 일들이 꼬이지 않고 갈등을 없애자는 마음이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