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가로서 가장 기뻤던 일이 자신의 만화를 보며 욕을 할 정도로 감동하는 독자를 만났을 때라고 하는 이현세. 완성도 떨어지는 작품은 독자들에게 보이지 않겠다는 그의 철저한 장인정신은 습작시절 작품에 집 한 채 값을 주겠다는 제안을 뿌리치고 원고들을 불태우게 한다. 그는 79년 `시모노세키의 까치놀이`로 대뷔, 82년 만화계 사상 최고의 판매 부수를 기록한 공포의 외인구단을 발표하면서 한국만화의 대중화를 선언했다. 그 후 청소년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아마게돈` 현대인의 역사의식을 재조명한 `남벌`, 성인만화의 진수 `블루엔젤` 등 다양한 작품들을 발표하면서 명실공히 한국 만화계의 선두에 우뚝 섰다. 고사 직전의 한국 만화계에 공포의 외인구단이라는 작품을 통해 만화에 대한 인식을 바꾼 사람. 아동의 전유물, 혹은 불량이라는 말로 표현되던 만화 독자로 성인까지 끌어들여 차원을 높임으로 하나의 문화로 인정받게 했다. 하나의 문화로 만화를 자리매김한 뒤 만화의 사업성에 눈을 일찍 떠 애니매이션 사업에도 진출했는데... 이현세 신드롬, 외인구단 신드롬이라고까지 불리는 사회 현상을 만든 그도 마인드만 갖고 뛰어든 애니매이션에서는 대 실패를 맛보았지만 거기에서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좌절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준비하고 있다. 일본을 비롯한 선진국의 집중 포격을 받고 있는 한국의 만화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몇 안되는 작가로, 미개척 분야인 애니매이션에 도전하는 감독의 모습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현세의 모습을 통해 또 다른 성공의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 할 수 있는 것은 만화 밖에 없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어린 시절부터 만화에 미쳐 있었던 이현세. 한때 미대 진학을 꿈꿨으나 색약이라는 판정을 받고 미대를 포기하고 문예 창작과에 진학한다. 긴 방황끝에 그의 결론은 만화밖에 없다는 것. 뒤늦은 나이로 본격적으로 만화가의 문하생으로 들어가 힘들게 만화에 발을 내딛는다. 초기 그의 만화에 등장하는 아웃사이더인 비극적인 주인공은 그의 이런 경험이 바탕이 됐다고 하는데. 95년 애니매이션이라는 새로운 분야에 야심차게 도전한 이현세는 `아마게돈`으로 대실패를 맛보았지만 그 경험을 발판 삼아 새로운 애니매이션에 도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한국 만화계를 대표하기 때문에 겪어야했던 고난과 좌절을 이겨내고 또다른 변화를 위해 달려가고 있는 만화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린 이현세의 모습을 통해 다양한 성공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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