慶州의 造形物을 보며《4》 -內容美를 중점으로(2) - 4, 14 向石 李 東 浩 (조각가) 경주 덕동땜 준공비 제작 -78, 농업진흥공사- 독립군총사령 朴商鎭 義士동상 제작 -82, 울산시- 탈고 않될 전설의 군마상 제작 -91, 천마공원(주) 새마을금고 신축연수원 조형물 -01, 천안시 목천면 미술은 모방감각에서 출발하고, 모방의 궁극목표는 그 사물에 대한“바로 그것과 흡사해”라는 묘사의 탄성관계이다. 존재하는 유무(有無)형의 사물에는 생물과 무생물이 있다. 그 구별은 유형의「생물이 살아 있고, 무생물은 죽어 있다」는 상태이기 보다「스스로 움직인다, 못 움직인다」의 현상이다, 무형의 정신도 마찬가지여서「스스로 문을 두드리면 열린다는」움직임을 뜻한다 무생물이라고 보는 지구가 죽어있는 상태가 아니라 자체가 움직이는 사물이어서「살아 움직이는 지구」에 생물과 무생물이 적절히 위치하고 있다. 그리고「움직인다」라는 현상은 ㉠ 지점에서 ㉡ 지점으로 위치를 바꾸는 과정이며, 그 목표는 보다 발전적으로 성장하여 변모되기 위함이다. 조물주께서 아담과 이브를 흙으로 빚어 생기를 주니 100m를 10초에 스스로 달리는 생동(生動)의 인간을 창조하였고, 조각가 로댕은 생물인간이 달리는 것처럼 보이는 생동의 감(感)을 무생물질 청동으로 창작하였다. 또한 솔거(率去)는「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노송(老松)을 황룡사 금당 벽면에 그렸더니 생물노송으로 착각한 참새가 충돌하였다 불멸의 조각가, 화가 그리고 건축가이며 시인 미켈란젤로는「돌 속에 생명이 꿈틀거린다」라고 했다. 이 역시 조각의 본질인 생동감을 명료하게 나타낸 말이라 생각된다. 따라서 조각에서「바로 그것이야, 실감난다!」 라는 감탄은「생동감의 포출정도」에 대한 것이라 보겠다. 부처님의 이미지를 표상 함에 있어서, 정중동(靜中動)의 동세를 화강석으로 생동감 넘치게 표출되었으므로 우리는 예배와 기원을 하게된다, 민속박물관에서 흔히 보는 밀랍마네킹은 처음에는 흡사「산 사람」같이 보이지만 점차 죽어 움직이지 못하는「사체(死體)의 섬뜩한 느낌」으로 변한다. 마네킹 같은 느낌을 주는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불상이 거대하지만 생동감이 결여된 화강석 덩어리가 과연 우리 중생을 구원할 수 있을까? 이 두 불상과 중국 운강(雲岡)석불의 조형적 비교는 차후에 살피고자 한다 경주1C에서 시내진입 서라벌도로를 국제관광도시의 대로로 86년 확장 할 당시, 숙원사업을 뒤로한 이 사업순위에 대한 시민의 반대와 비난도 무릅쓰고 추진, 개통되었고 이제는 그 타당성을 수긍한다. 그런데 대로에 있는 나정교(蘿井橋) 난간양편의 양 종점에 위치하는 조형물에서 그 좌대 만이 설치되었던 까닭은 예산부족으로 알고 있었다. 필자가 이 교량의 난간디자인과 조형물구상에 관계했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시민으로서, 또 관계한 입장에서 무관심할 수가 없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국내외의 객(客)에게 각인될 경주시 가시인상의 첫 관문격인 나정교에 바람직한 조형물이 빨리 조성되어야 할 텐데, 그러나 조성하지 않았다. 그 후 10여년 지난 90년대 중반 어느 날 갑자기 수(♂) 石사자 4구가 동일한 모습으로 설치되었다. 그런데 이 석사자들은 사자의 겉모양만 흉내냈을 뿐이지 경주를 수호하려는 생동사자의 당당한 위용이나 동세가 없을 뿐만 아니라 그 빈약한 양감과 규모는 주위의 광활한 공간에 짓눌린 엉거주춤한 자세로 설치되어 있음에 놀랐다. 그러나 이곳이 고속도로 진입로여서 주행 중에는 이 사자상의 존재나 무가치성이 눈에 잘 띠지는 않는다 이러함에 대한 관심이 식기도 전에 한술 더 떠서 이번에는 많은 시민과 관광객이 인도로 이용하는 서천교(西川橋)에도 나정교 것과 동형의 4구 석사자가 을씨년스러운 모습에다가 포효한답시고 입이나 벌리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또한 교량 서편에 세워진 라이온즈클럽 상징조형물의 석사자상 때문에 교량의 석사자상은 더욱 빈약하게 보인다. 이 두 사자상이 같은 구상(具象)형이어서 그 규모의 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시(市)나 시민(市民)은 조형에 전문일 수는 없다. 또한 전문적인 견해와 일반적인 관념이 다른 경우도 있다. 그러하기에 시정은 안좌하고 시민은 안주하고 있을 뿐이다.「나는 이에 아무 관심도 없으므로 모두가 나와 같을 것이며 또 나와는 관계도 없는 일상이고, 그런 부분은 전문가의 소관문제」라는 잣대로 하여금 함구한다. 그러나 느끼는 감(感)은 전문가나 비전문가나 매 한가지다. 필자에게 여러 분들이 그것에 관해서 말한다. 관심의 시민은 필자뿐만 아니고 예상 이외로 많다 그러한 사자조형물이 시민에게 등한시되고 전문가에게는 무시나 당하는 대상이라면 설치할 필요도 없고, 필요하다면 필요 충분조건의 조형물을 설치함이 타당하지 않을까?. 왜냐하면 조형물은 시민의 의식과 수준을 반영하는 체(體)이기 때문이다 경주의 정체는 그러한 사자상과 같이 빈약하고 위용과 생동이 없는 시정도 아니고 시민도 아니다. 바람직한 교량조형물이 어찌 사자상 뿐이겠는가? 전국관광지 교량조형물의 대부분은 그 지방을 상징하는 특정사물을 주제로 한다. 예로 강원도는 곰, 학 등이지만 도시마다 다르고 교량마다 동일하지도 않다 나정교를 확장할 당시 필자는 사자상을 포함하여 금관(金冠), 곡옥(曲玉)등을 주제로 구상한 한 4종류의 안을 제출했었다. 그러나 구태여 수호석사자로 한다면 일본과 미국, 유럽에서 순회한「한국미술 5000년 전」에 전시되었던 괘릉동 원성왕릉(元聖王陵)의 수호석사자가 버젓이 경주에 있다는 사실을 시민 대부분도 아마 모를 것이다. 그래서 기능석공들의 대량제품인 이 보잘 것 없지만 흉내라도 낸 石사자상이나마 설치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 바람직한 조형물로 교체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 교량의 현 석사자상을 보고 외지는 물론 유니버시아드 관광객이 어떻게 말할까? 원성왕릉에는 石사자를 포함하여 문무인(文武人)상들이 있다. 통일신라 조형전성기의 맥을 이은 이 조각들은 가히 석굴암 불상조각과 그 조형수준을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이다 필자는 이론가가 아니고 제작하는 조각가의 입장에서 이를 고찰할 예정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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